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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만난 세상]조정을 권합니다

정성균 춘천지방법원 부장판사

재산상 분쟁을 다루는 민사소송은 이를 시작하는 사람(원고)이나 그 상대방(피고) 모두 대개 불가피한 사정이 있고, 불편한 마음으로 법원에 오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재판을 하게 된 이상 원고와 피고 모두 재판을 통해 정의(?)를 확인받고자 하고, 이런 마음가짐의 당사자는 법원이 시도하는 조정에 대해 소극적이고 심지어는 조정을 언급하는 재판부를 불신하기도 한다.

당사자는 재판에 오기까지의 과정이나 경위를 하소연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수많은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판사로서는 당사자의 희망과 달리 핵심만 듣고 싶다. 즉, 대여금의 경우 원고는 애지중지 모은 돈을 어떤 경위로 얼마나 어렵게 빌려줬는데 피고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자신을 힘들게 했다는 등의 얘기를 하고 싶고 판사가 그 얘기를 들어주기를 원한다. 판사로서는 언제, 얼마의 돈을 어떤 조건으로 빌려줬는지 핵심(요건사실)만 듣기를 원하고, 그 주장에 부합하는 차용증(증거)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판결문에도 당사자가 말하는 숱한 얘기는 사라지고 수많은 주장은 간략히 정리된 채 '법률가의 언어'로 재구성돼 오로지 판사가 듣고 싶어 한 핵심만 기재한다. 결과에 따라서는 매몰차게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재판에서 가장 큰 문제는 당연한 얘기이지만 법이 어렵다는 것이다. 전문가에게도 법은 어렵다. 재판에서는 대개 원고가 자신의 요구(청구)가 법에 정한 요건을 구비했다는 점을 스스로 주장, 입증해야 하는데, 대여금이나 임대차보증금 반환과 같이 비교적 단순해 보이는 청구조차도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어렵다. 계약금의 경우 일반적으로 준 돈을 포기하거나 받은 돈만큼을 덧붙여 돌려주면 된다고 알고 있을 텐데, 재판까지 올 정도면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때가 많다. 필자로서는 제일 어려운 유형의 사건 중 하나다. 즉, 당사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가 아니라 판사가 듣고자 하는 핵심을 정확히 주장하고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재판을 하게 되면 당사자가 자신의 주장을 충분히 못 하게 되고, 그 재판에서 핵심(법률적 쟁점)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잔인한 판결을 받기도 한다. 심지어 그 판결문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다. 요즘처럼 법원의 권위가 실추된 상황에서는 더욱 원고는 원고대로, 피고는 피고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주장)만 하고, 판사는 자신이 이해한 대로 당사자의 주장과 동떨어진 듯한 판결을 선고한다. 그래서 판결문에 제일 많이 등장하는 표현이 '주장이나 증거가 부족하다'인지도 모르겠다.

제도나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 이상 재판의 결론은 앞으로도 당사자가 예측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최선은 불만스럽더라도 서로 타협하는 것이다. 당사자로서 정말 억울한 패소 판결보다는 일부 손해를 보더라도 조정에 응하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양보하라는 것은 아니고 자신의 이해관계를 최대한 반영한 조정안을 이끌어내는 것이 좋다. 그리고 어떤 조정은 판결보다도 못한 경우가 있으니 당사자는 조정문안을 신중히 검토해야 하고, 특히 자신이나 상대방이 약속을 어겼을 경우 어떠한 조치가 가능한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분쟁은 서로 노력해야 해결할 수 있다. 법원이나 판결이 최선의 선택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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