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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문화단상]소양정(昭陽亭) 제자리 찾기는 언제

이도행 소설가

기록에는 '소양정(昭陽亭)'이 삼한시대부터 있었단다. 현존하는 정자나 누각 중 가장 오래됐다는 사실의 증명이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정자가 최고(最高)의 명승에 위치하면서도 누각도 아닌 겨우 '정자(亭子)'로 존재한 이유는 뭘까. 삼한시대만 해도 후대보단 건축기술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인가. 단층의 자그마한 정자로 천하제일 자연경관을 관상한 그 시대 현인들의 심안에 내심 갈채와 축복을 보낸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낭떠러지인 봉의산 북사면(北斜面)의 강가, 지번으로는 춘천시 소양로 1가 산 1-1이지만 본디 소양정이 있던 곳은 현존(現存) 소양정 자리가 아닌 뒤뚜르(후평동) 방향 약 120m로 소양강 시린 물살을 바로 코앞에 내려다보는 층암절벽 위였다. 지금의 춘천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엔 사람들이 주로 소양강 건너 샘밭 쪽에 살았다. 논밭을 경작하며 삶을 이어가던 농경 시대였으니 산과 언덕이 엄청나게 많은 춘천보다는 샘밭벌에 자릴 잡는 게 당연했으리라. 어쨌건 그 샘밭벌을 곁눈질하며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영락없이 소의 머리를 닮았다는 우두산(牛頭山·일명 소슬뫼)을 기역자로 빗긴 뒤 곧장 물길 방향을 거칠게 가로막는 봉의산 때문에 줄곧 멈칫거리다가 결국 할미여울 하나 슬몃 남겨놓고는 이번엔 다시 우측으로 꺾여 공지천 아래 대바지강과 합류한다고 서쪽으로 머리를 튼다.

소양정은 자주 소실된다. 나라에 변란만 생기면 화마를 당해 없어지고 얼마 후 다시 춘천으로 내려온 관리가 재건, 중수(重修)의 삽을 드는데 그렇게 마지막으로 사라진 게 6·25전쟁이다. 그리곤 전쟁 직후라 먹고살기 바빠 눈길 한 번 안 주다가 필요에 따라 소양1교에서 뒤뚜르로 직행하는 봉의산 뒷길을 1956년쯤 새로 개설하고 다시 1966년 지금의 자리에 어쩌자고 고증 한번 안 하고 떡하니 누각으로 세우니 당시 도지사가 군 출신 박경원씨였다. 당장의 삶에만 급급하다 지각 있고 양식 있는 몇몇 사람이 모여 '소양정 제 모습 찾기'를 입 모아 합창하기 시작한다.

춘천역사문화연구회는 옛 소양정 자리가 봉의산 뒷길 다슬기집과 그 주변이란 사실을 채증까지 해 다슬기집 밑 기단에서 발견된 2기의 마애선정비와 2기의 마애비 그리고 옛 소양정의 기초였던 주춧돌을 근거로 제시하니 이런 역사적 사실을 무시한 채 옛 소양정 터를 허물어 자전거도로를 개설하겠다는 관계기관을 찾아 큰소리로 항의하기도….

요즘이야 고층아파트가 줄줄이 들어서 시야가 좀 그렇지만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소양정 본디 자리에서 내다본 경관은 가히 천하일경이었다. 깎아지른 봉의산을 등지고 우측의 뒤뚜르와 먼 고산(소금강) 그 너머 모진강과 다시 뉘엿뉘엿 황혼이 지는 중도 너머 자양강 저쪽 서면의 기름진 평야를 일망무제로 내다보는 기분은 얼마나 황홀했을까. 매월당 다산 김상헌 김창협 등 내로라하는 사람들의 시액이 걸린 소양정이 예전 모습으로 예전 그 자리에 다시 설 날은 대체 언제일지. 그런 날이 오기는 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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