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일보 모바일 구독자 240만
기고

[금요칼럼]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

진용선 아리랑박물관장

아침이면 나는 늘 커피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모카포트에 커피를 채우고 압력과 함께 끓어오르기 시작할 때, 그 소리에 묻어나오는 진한 커피향이 나는 참 좋다. 하얀 잔 안에 황금색 크레마가 가라앉고 단맛이 이어질 무렵 컴퓨터를 켜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이제는 일상이 됐다.

내가 커피를 처음 경험한 때는 중학교 2학년 겨울이다. 겨울 초입에 들어설 무렵 춘천으로 전학을 갔고, 그해 겨울 방학 때 하숙집 형을 따라 공지천 옆에 있는 '이디오피아의집'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경험한 커피는 에티오피아 원두를 썼다는 이름도 모르는 쓴 커피였고, 채 마시지도 못한 채 연인들이 마주 보며 노를 젓는 조각배를 바라본 게 전부였다. 나에게 첫 커피는 한 마디로 '맛없는 쓴맛'이었다.

하지만 처음 커피를 알게 된 곳이 특별한 곳임을 안 것은 대학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이디오피아의집을 다시 찾게 되면서였다. 6·25전쟁 때 에티오피아가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지상군, 그것도 최정예 황실근위부대를 보내 주로 춘천을 거쳐 중동부 전선에서 싸웠다는 사실과 1968년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슬라세 황제가 다녀간 곳에 이디오피아의집과 기념탑이 들어서자 황실 커피생두를 외교 행낭으로 보내줘 한국 최초의 원두커피 전문점을 열게 됐다는 사실도 그때 자세히 알게 됐다. 중학교 때 내가 하숙집 형과 놀던 공지천 옆의 참전기념비가 고귀한 희생의 역사가 깃든 곳이고, 저녁 무렵 들어간 커피점이 예사롭지 않은 곳임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처음 커피를 맛본 곳에 대한 추억과 기억을 오랫동안 간직했다.

그 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커피를 마셨는지, 또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궁금해졌다. 우리와 함께 해 온 지 130년에 이르는 문화적 산물인 커피의 역사를 찾았고, 이런저런 이야기와 고민을 나누느라 북적이던 고향 마을 다방 이야기를 정리해 지난해 겨울 '박물관에서 커피 한잔'이라는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오늘도 박물관에 출근해 맛있게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첫 향미와 함께 느껴지는 고소함과 달콤함이 오늘도 여전하다. 천차만별인 커피를 두고 개인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커피, 가장 맛있는 커피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커피로 사랑받는 커피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탄생한 '카페 소스페소(Caffe sospeso)'라고 한다. '카페 소스페소'는 카페에 들른 손님이 돈 없는 이들을 위해 미리 값을 지불해 '맡겨둔 커피'란 뜻이다. 카페 소스페소를 마시는 사람은 가난한 노인, 노숙인, 집시 등 다양하다. 이 커피는 언제나 따뜻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는 역시 좋은 사람들과 나누는 커피일 것이다. 혼자서 마시는 커피는 맛을 음미하며 잔향과 '감칠맛', '매끄러운 여운'을 느낄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커피는 깊고 풍부하고 미묘한 맛의 변화와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며칠 후면 추석이다. 가족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커피 한잔의 추억을 만들면 어떨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함께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자 고마움이다.

외부 기고는 본보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