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일보 모바일 구독자 240만
칼럼

[대청봉]대중성 부족한 `정선아리랑'

오석기 문화부장

2018년 2월9일.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펼쳐진 2018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 까만 갓, 하얀 도포를 차려 입은 소리꾼 김남기 옹이 동그랗게 그려진 메밀꽃 밭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이내 구성진 정선아리랑 가락이 차가운 공기, 어스레한 개회식 공간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순간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예고 없이 맞닥뜨린 '뜻밖의 순간'에 전율 같은 게 느껴졌다는 표현이 맞겠다. 음악감독을 맡은 양방언씨가 평소 정선아리랑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어 어떤 형태로든 불릴 것이라는 기대감은 있었지만 이 같은 등장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것도 전 세계인의 관심 속에 시작된 올림픽 개회식에서 말이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 결정과 함께 평화올림픽 실현의 가능성이 높아진 역사적인 순간, 그 자리에 '평화'를 마중 나온 가락이 '정선아리랑'이라는 사실 앞에서 여간해서는 감동을 안 할 재간이 없었다. 강원도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 그랬을 것이다.

당시 개회식에는 3만5,000여명의 현장 관람객은 물론 전세계 미디어와 25억명에 이르는 시청자의 시선이 집중돼 있었다고 하니 정선아리랑이 가장 '월드와이드(Worldwide)'하게 알려진 사건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분명 나에게는 영화 '서편제'에서 주인공 세 명이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청산도 돌담길을 걷던 장면에서 느꼈던 감동과 비견될 만한, 아니 그 이상의 강렬한 장면이었다.

2018년 9월20일. 평창에서 '정선아리랑'의 구성진 가락이 흐드러지게 흐른 지 224일째 되던 날.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백두산 천지에서는 '진도아리랑'의 노랫말이 흥겹게 울려 퍼졌다. 지난달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함께 백두산을 등반하고 천지를 떠나려고 할 때 동행한 가수 알리가 즉석에서 부른 노래가 바로 진도아리랑이었다.

이 소식을 듣고 있자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올림픽 개회식에서 많은 사람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한 '정선아리랑'이 정작 백두산 천지에서는 불리지 못한 사실에 대한 아쉬움이 그것이다. 전문가들은 통속민요(직업 음악인들에 의해 불리는 민요풍의 노래)인 진도·밀양아리랑과 토속민요(지방에 따라 불리는 향토적인 민요)인 정선아리랑의 차이. 거기에서 오는 대중성의 문제라고 설명한다. 아마도 알리가 정선아리랑을 잘 알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 이를 위해 '토리(지방마다 가지고 있는 음악적 특징)'를 지키며 대중성을 확보해 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한반도 평화 분위기 조성의 마중물 역할을 한 강원도. 그로부터 7개월. 평화 이니셔티브를 잡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 주제는 '행동하는 평화(Peace in motion)'였다.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