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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포럼]남한강에서 다시 떼꾼을 만나다

진용선 아리랑박물관장

오늘 나는 충북 충주 샘개나루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정선떼꾼의 발자취가 담긴 '다시 쓰는 정선뗏목'을 갈무리하기 위해 들른 곳이다. 샘개나루는 오래전 남한강을 내려가던 떼꾼들이 가장 떠들썩하게 정선아리랑을 불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곳이다.

남한강 뗏목에 대해 내가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떼꾼이 걸출한 소리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아리랑을 찾아다니다 보니 동강과 남한강 물길 나루터, 주막 인근 마을에는 늘 떼꾼들의 아리랑이 있었다.

내가 처음 만난 떼꾼은 송문옥씨였다.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인 1990년 초가을 정선 여량면의 아우라지가 훤히 내다보이는 갈금마을에서였다. 거친 물살을 헤치고 서울까지 다다르던 떼꾼들의 삶이 만들어낸 소리를 갈망한 터라 송씨와의 만남은 무척 남달랐다. 스무 살에 정선에 들어와 쉰아홉까지 떼를 타면서 살아온 이야기를 그는 아라리와 함께 풀어줬다.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듯하면 조약돌을 주워 들고 돌밭에 그리는 시늉을 하며 설명해줬다.

그와의 첫 만남은 이른 아침부터 갈금마을, 아우라지, 경로당, 고려다방 등지를 오가며 밤늦게까지 이어졌고 그 다음 날도 계속됐다. 하지만 그때가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은 몰랐다. 내 작업에 숱한 기록을 보태주고 이듬해 여든다섯의 쓸쓸한 생애를 마감했다.

그 후 나는 떼꾼의 삶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됐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황룡, 문선수씨에서부터 이명근, 신경우, 김봉규씨 등 남한강 일대에까지 소문이 자자했던 떼꾼들을 다른 곳이 아닌 정선 땅에서 만날 수 있었다.

강을 떠나지 못해 강가에서 살아가던 떼꾼은 장대비라도 쏟아지기 시작하면 가슴이 뛰곤 했다. 아우라지에서 비를 긋고 만난 김황룡씨는 “떼 한 번만 더 타고 싶다”며 물끄러미 강물을 바라보기도 했다. 신경우씨는 아우라지에서 황새여울, 영월 덕포까지 내 길에 동행이 돼주기도 했다.

떼꾼들의 삶을 차근차근 정리하면서 동강과 남한강 일대도 답사했다. 한편으로는 신문이나 잡지 등에 글을 발표하면서 떼꾼들과 함께 아우라지에서 뗏목을 만들어봤다. 1992년 제17회 정선아리랑제 때에는 정선의 한 단체와 함께 조양강에서 처음으로 뗏목 재현을 구체화할 수 있었고, 몇 년 뒤 '정선뗏목'이라는 제목으로 작은 책을 펴내 그 동안의 작업을 다소나마 정리하기도 했다. 2004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한강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열릴 때에는 떼꾼 신경우씨와 함께 정선뗏목을 실물처럼 만들어 선보였다. 그런데 떼꾼들의 뒷얘기가 아쉬웠다. 그때부터 남한강 떼꾼과 객줏집 흔적을 찾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발로 뛰면서 떼꾼들과 긴긴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며, 미처 기록하지 못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선뗏목과의 오랜 인연은 나에게 '필드(Field)가 선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줬다.

남한강은 뗏목에 얽힌 이야기가 풍부하다. 뗏목은 오늘날 한강 문화콘텐츠의 핵심이며, 창의력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원천이 되고 있다.

떼꾼들이 떼를 엮던 아우라지에는 곧 뗏목자료관이 생기고, 남한강 일대 곳곳에서 뗏목을 재현하는 행사가 눈길을 끌고 있다. 오늘 나는 오래전 떼꾼들이 그토록 즐겨 부르던 정선아리랑을 남한강에서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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