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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갑질에 관한 법은 왜 없나

김백신 아동문학가 ·춘천시문화복지국장

나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미라 노상 발발거리고 다니지만 어쩌다 시간이 나면 반드시 들르는 인터넷카페가 있다. 정회원으로 가입한 지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끈을 놓지 않는 것은 그곳 터줏대감이 올려주는 세상 이야기 때문이다. 찻집 여주인 이야기부터 의료분쟁, 국회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가려움을 제대로 긁어내는 그 시원함에 내가 대리만족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내 혼을 적당히 잠식하고 있는 그가 쓴 오늘의 이야기는 성희롱이었다. 내용은 얼마 전 도지사에서 내려앉은 안씨의 무죄 판결에 대한 이야기다. '안 지사를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여성들도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바로 답글을 썼다. 그 여성은 '태도를 분명히 하는 순간 직장을 잃는 위치에 있었다'라고. 갑을관계(위계)가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 꽃송이 꽃처럼 세상을 버린 장자연이 성 상납을 강요당한 것도 갑질 때문 아니던가.

성희롱의 성립 요건은 '성적 언동 등으로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라며 일부에선 '여성 동료와는 대면도 하지 말자'는 펜스룰을 보인 적도 있지만 직장 내 성희롱도 법이 있어 안정됐다 믿는다.

며칠 전 후배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원장이 보육교사에게 흰 양말을 좋아한다 했다면 그것도 갑질일까요?”

“갑질이지!” 나는 지체 없이 답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무심코 던지는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 했다. 앞뒤 상황을 살피면, 원장은 웃자고 하는 말이었는지 모르지만 듣는 교사는 찰나의 순간 고민했을 것이다. '양말을 사줘야 하는 것 아닌가?' 교사에게 혹 불리한 일이 생긴다면 '양말이 아닌 옷을 사줘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할 것이다.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양말 한 켤레가 갑을관계에선 삶이 걸린 문제가 된다.

하지만 갑질은 아직 법이 없다. 공공기관마다 갑질신고센터가 만들어졌고 여기저기서 뒤틀어진 사회의 단면이 모두의 공분을 샀지만 포토라인에 섰던 그들의 혐의는 횡령이나 마약이지 갑질 가해자로 구속되진 않았다. 물 한 컵 끼얹었다고 범죄자로 구속하긴 어려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유감이다. 법이 없으면 죄도 없는 것, 관련 법이 갖춰져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가 없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계속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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