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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청봉]비전 빠진 평창기념식

김영석 평창주재 부장

달리는 말은 발굽을 멈추지 않는다는 뜻의 '마부정제(馬不停蹄)'. '지난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더 발전하고 정진하자'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중국 원나라 극작가 왕시푸(王實甫)의 작품 '여춘당(麗春堂)' 2막에 '적타급난척수(的他急難措手) 타적타마부정제(打的他馬不停蹄)'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여기서 유래한 말이다. 적을 공격할 때에는 적이 미처 손을 쓸 틈도 없이 재빠르게 공격해야 하고, 일단 공격을 시작하면 말발굽을 멈추지 않고 적을 사지로 몰아넣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2018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과에 너무 안주하지는 않았나 생각해 봐야 한다. 지난 9일 평창군 대관령면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1주년 기념식이 그러했다. 기념식에는 6,500여명의 주민과 올림픽 자원봉사자, 서포터즈, 관계자들이 참석해 1주년을 기념하고 1년 전 동계올림픽의 감동과 환희를 다시 한번 되새겼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정작 '성공한 그 올림픽을 통해 앞으로 어떤 결과를 내기 위해 정진하겠다'는 비전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1주년 기념식 개최 장소를 놓고 강원도와의 갈등을 해결하느라 단 20여일의 준비 기간만으로 기념식을 치러냈으니 그나마도 잘했다고 평가해야 할까?

기념행사에 참석했던 한 주민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맴돈다. “1년 전 동계올림픽 당시가 생생하게 기억나 가슴이 뛴다. 하지만 서글픈 마음도 든다. 주변을 둘러봐라. 화려했던 개·폐회식장은 모두 철거되고 허허벌판만 남았다. 이러려고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고 치러내느라 그 고생을 했는지…”

다행스럽게도 기념식에서는 보여주지 못한 평창 번영의 비전은 계속 추진되고 있다. '평화'라는 올림픽 최대 유산이 바로 그 비전이다. 이에 따라 평창은 '평화'라는 올림픽 유산으로 다시 한 번 도약할 계획을 진행 중이다. '평창에서 시작하는 세계 평화'를 주제로 제1회 평창평화포럼이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열리고 있다. 내년 포럼에서는 '평창평화의제'를 채택한다. 다보스포럼에 버금가는 국제적인 포럼으로 발전할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올림픽 기념사업과 시설 활용을 전담할 '올림픽 기념재단'도 평창에 들어선다. 현재 기본계획을 확정하고 정부와 세부사항을 협의 중이니 올 상반기 중에는 공식 출범할 것으로 기대된다. 3월에는 평창평화도시 선포식을 열고, '평창군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조례' 제정으로 남북협력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할 발판도 마련한다. 평화유산사업을 전담할 기구로 평창평화재단 설립도 고려 중이다.

이제 평창은 지난 성과에 머무르지 않고 말발굽을 내달려야 한다. 평화라는 올림픽 유산으로 도약하고 전 세계에 유례없는 근사한 '평화도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이 '평화의제'를 선점하는 통쾌한 아이러니를 역사 속에 새길 수 있다. 평창이 평화의 주역이 되는 날을 맞이하도록 마부정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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