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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강원포럼]거미줄 너머 거미를 봐야

서경구 도교육연구원 교육연구사

2010년을 전후로 혁신교육이 본격화되고 출판 환경이 변하면서 현장 교사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긴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교육의 현재를 톺아보며 대안을 마련하거나 미래교육의 큰 그림을 제시하는 저자 대부분이 현장 교사라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새해 들어 나는 하고많은 책 중에서 정용주의 '교육학의 가장자리'를 읽는 행운을 누렸다. '이 책이야말로 새해 새 아침의 축복과 같지 않은가.' 복을 더 받을 심산으로 거푸 두 번 더 정독했다. 이 책이 환상적 소망이기 십상인 덕담이나 교육 문제를 해결할 비결(秘訣)을 담아서가 아니다. 이 책의 미덕은 오히려 덕담과 비결 반대쪽에 있다. '갇혀 있는 생각의 틀을 깨뜨리는 망치'(신영복) 같은 글 앞에서 나는 자주 움찔했고 오래되고 굳어진 내 생각의 배치를 바꿔보곤 했다.

현직 초등교사이자 교육의 불평등과 불평등을 유발하는 제도 연구자인 저자는 2010년 이후의 교육개혁, 기간제교사, 신규교사, 혁신학교, 진보교육, 불평등, 교육 생태계, 미래교육 등의 다양한 화제를 통해 '좋은 교육은 좋은 노동을 통한 좋은 사회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믿음직스럽게 논파해 낸다. 그의 논의를 따른다면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정교한 정책, 넉넉한 예산, 사명감에 찬 구성원의 열정, 치밀한 제도? 그는 무엇을 더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지금 우리 '교육의 비참함'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서는 실체 없이 유령처럼 떠돌며 현실을 옥죄는 다양한 교육 신화, 허구적 이데올로기를 부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교육 격차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강화되는 현실에서 '교육을 통한 희망찬 미래' 설계는 입에 발린 수사이거나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개발 공약(空約)과 다를 바 없다. 또 한편에서 백화쟁명으로 거론되는 정책, 예산, 열정, 제도도 수렁으로 빠지기 일쑤다. 왜 그런가? 현실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만 힘을 쏟다 보니 임기응변식의 처방, 땜질, 덧칠에 그칠 뿐 문제 상황을 만든 진짜 문제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을 방해하는 거미줄을 탓하고 꾸짖긴 쉽다. 당장 눈에 보이는 건 누군가의 수고로 제거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런 까닭으로 아이에게 '노력'을 강요하고 부모의 사회·경제적 수준을 가늠하며 주어진 처지를 합리화한다. 그리고 학교를, 교육청을 비난한다. 진짜 문제는 거미줄을 친 거미인데 말이다. 아이의 학업 성취도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지금처럼 규정한 거미줄, 그 너머의 거미를 봐야 한다.

이제 곧 있으면 새 학기가 시작된다. 크게 보면 지난해와 다름없는 반복처럼 보이지만 그 안의 생동하는 구체성은 언제나 재생 불가의 새로움이다. 그리고 그 새로움은 아이와 부모의 현재처럼 '자연 법칙이 아니라 제도'에 따라 달라진다. 제도로서의 혁신교육 10년, 무엇을 보완하고 무엇을 더 부숴내야 하는지를 새삼 일깨우는 '각성의 체험'으로 새 학기 준비에 분주해질 교육 구성원, 그리고 자녀의 진학으로 설렘과 걱정을 경험하게 될 학부모에게 공교육의 책임과 권리, 강원교육의 '희망의 조건'을 찾는 지도로 정용주의 '교육학의 가장자리'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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