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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만난 세상]같은 사건 서로 다른 기억 `씨 왓'

유재영 춘천지법 판사

'연뮤덕(연극·뮤지컬 애호가들)'이 간혹 쓰는 말 중에 '씨 왓(See What)'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 표현은 '씨 왓 아이 워너 씨(See What I wanna See)'라는 제목의 뮤지컬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씨 왓 아이 워너 씨'는 아쿠다카와 류노스케의 단편 소설 '케사와 모리토', '덤불 속', '용'을 원작으로 한다('덤불 속'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의 원작이기도 하다).

한 남자가 센트럴파크에서 살해당한다. 강도는 유명세를 얻기 위해 자신이 남자를 죽인 살인범이라고 주장한다. 남자의 아내는 강도로부터 강간을 당하자 아내와 남편이 동반자살을 시도했는데 남편만 죽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죽은 남자의 목소리를 전하는 영매는 강도의 꾐에 넘어갔고 아내 역시 자신을 배신했다고 주장한다. 경비원은 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지만 진술 내용에 일관성이 없다. 하나의 사건이라도 사람마다 각자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씨 왓'이라는 표현도 주로 같은 공연을 봐도 관객마다 서로 다른 감상을 느끼고, 서로 다른 기억을 하게 된다는 뜻으로 쓰인다.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현상은 소설이나 영화, 뮤지컬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실제 법정에서도 자주 보이는 현상이다.

원고와 피고가 같은 사건을 전혀 다르게 기억하고, 그래서 서로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화를 낸다. 법정에서 기일이 계속되면서 서로를 거짓말쟁이라고 화를 내는 경험이 반복되면 나중에는 처음 소송을 하게 된 목적과 상관없이 '상대방이 괘씸하다'며 소송을 계속하기도 한다.

내 기억에는 분명 아닌데 상대방이 내 기억과 다른 주장을 하면 당황스럽고 억울한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한 번쯤 혹시 내가 기억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혹은 내 기억이 맞더라도 상대방이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고, 상대방도 잘못 기억하고 있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는 것이 어떨까.

상대방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해 화가 나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힘든 일이다.

법원에서는 '씨 왓'인 기억들 중에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서로 다른 주장을 비교해보고, 증언과 서류들과 증거물들을 맞춰본다. 그 노력의 결과가 판결문에 적힌다.

그럼에도 사람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고 증거는 늘 부족하고 판사 역시 신이 아니기 때문에 판결의 사실관계가 당사자들의 기억과 다를 수 있고, 실체적 진실과 다를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염치없지만 적어도 의도적으로 사실관계를 왜곡한 것은 아니라는 것은 믿어주셨으면 좋겠다.

'씨 왓'이라는 표현은 공연에 대한 감상이 관객마다 다르다는 것이기 때문에 대개 다른 사람의 감상을 존중해주자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법정에서도 각자의 기억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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