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일보 모바일 구독자 240만
오피니언일반

[문화단상]“약주 드시러 오세요”

이응철 강원수필문학회장

예전에는 동네 사람들 아침을 대접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상님들 기제사, 생신 또 다른 경사가 끝난 후 동네 사람들을 초대한다. 당시 초등생이던 나는 새벽이면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소리친다. “약주 드시러 오세요.”“아침 잡수시러 오세요.”

십여 가구가 모여 살던 고향 동네엔 그럴 때마다 뒷산 딱따구리 소리는 목탁 소리였다. 십여명의 어른이 이른 아침 모여든다. 술 잘 담그시는데 호가 나신 어머님 술맛이 최고라고 칭송하신다. 어렵던 시절 모처럼 반찬이 널브러져 있다. 어른들 생신 때는 꼭 초대를 한다. 그런 연유로 동네 크고 작은 대소사들은 서로 익히 알고 있다. 추석이나 설날이면 떡을 돌린다. 모든 것이 주고받는 일종의 품앗이와 같다. 새벽부터 화로에 석쇠를 얹고 기름을 발라 김 굽는 일이 우선이다.

아침에 학교에서 납부금을 가져오라고 할 때 어머님은 주로 이웃집에 가서 취해 온다. 내가 가서 직접 말하려면 목소리가 언제나 모기 소리만 하지만 어른들을 초대할 때는 집집마다 돌며 언제나 큰 소리다. 아침을 먹고 품앗이 일을 가기 때문에 농번기 때는 일찍 서둘러 초대를 한다.

얼마 전에 친척 형제들을 모시고 조촐하게 고희연을 베풀었다. 예전과 달리 요즘은 외식문화가 발달돼 좀처럼 집에서 치르지 않는다. 구남매 중 용케도 파고를 헤치며 남은 일곱 형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병마에 시달려도 꿋꿋하시어 다행이다. 소장사로 전대를 차고 밤중에도 물건 좋은 황독(黃犢)이면 갑툰 고개를 수없이 넘던 큰 형님도 고희를 맞은 막냇동생에게 숨겨진 신화 같은 말씀만 하셨다. 누님들 조차 봄내에 살면서도 만나지 못하다가 함께 모이니 무기력한 기분을 일소하고, 새봄을 맞은 기분이셨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새벽밥 해주시던 형수는 치매로 일구월심 고향인 공골로 가야 한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봇짐을 싸신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모두는 가까운 누님네 댁으로 가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하며 보낸 하루가 값지다. 산수(傘壽)에서 구순까지이니 저마다 몸의 신호들을 고백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일 때 집으로 모셔 민화투도 즐겨 치시더니 이젠 화투조차 버거워하시고 가벼운 설전(舌戰)조차 없으니 세월이 마냥 원망스러웠다. 유난히 구남매 중 막내만 대학을 보낸 특권으로 종갓집에서 늘 처신이 조심스럽다. 미수(米壽)를 맞은 백형께서 오래 내 얼굴에 시선이 머문다. 그 어렵던 시절, 새벽이면 부잣집 도급모를 자청하시어 현찰을 받아 밀린 중학교 등록금을 건네 주시던 형님이 아니던가! 많은 식구의 호구지책으로 일구월심 홀어머님과 형님은 항상 이마에 주름 펴실 날이 없으셨다.

생전에 쉽게 출산하시던 엄니 이야기, 식구가 많아 남의 집에 보냈던 다섯째 누님께서 생뚱맞게 향(香)을 훔치던 바람난 친구 얘기로 환하게 웃음보가 터지기도 했다.

“약주 잡수시러 오세요.” “그럼, 가고 말고!”

한 집 한 분씩 대문 열고 들어서던 예전 모습이 참으로 그립다.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