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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금요칼럼]스타벅스와 테라로사

한종호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장

강원도 묵호 출신의 한 은행원이 외환위기로 명예퇴직을 하고 나와 늦깎이로 강릉에서 '테라로사'라는 이름의 원두커피 가게를 창업했다. 2002년 1호점을 낸 이후 테라로사는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으로 폭발적 성장을 거듭하며 16년 만에 서울 부산 제주 등 전국에 14개의 매장을 가진 연매출 300억원의 중견기업이 됐고 커피콩 한 알 나지 않는 강릉은 '커피의 도시'가 됐다.ㅤ

스타벅스는 커피를 좋아하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대학 동창 세 사람이 1만 달러씩을 모아 시애틀의 동네 시장인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한쪽에서 아라비카 커피 원두 판매점으로 시작했다. 지금은 전 세계 70여개국에서 2만8,000여개의 매장을 운영하며 연매출 30조원, 기업가치 100조원을 자랑하는 글로벌 기업이 됐다. 시애틀에 있는 스타벅스 1호점에는 전 세계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두 회사는 '차원이 다른 커피 맛'으로 승부를 봤다는 점에서 닮은꼴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공통점은 로컬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커피를 매개로 한 앵커공간을 기반으로 로컬화 전략을 적절히 구사하며 성장해 왔다는 점이다. '집도 일터도 아닌 제3의 장소'를 추구하는 스타벅스는 전 세계 공통으로 표준화된 커피와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해당 지역 문화에 맞는 공간 구성 및 메뉴로 손님을 잡아끈다. 중국에서는 중추절에 월병을 팔고 일본에서는 벚꽃 무늬를 새긴 텀블러를 판매하는 식이다.

테라로사는 고급커피 전문점으로서의 정체성뿐 아니라 매장이 위치한 장소가 지닌 시간성·공간성·사회성에 특히 관심을 쏟는다. 부산 수영점은 45년간 강철 와이어를 생산하던 공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생시킨 'F1963' 내에 입점해 있고 서울 소월길점은 1970년대 지은 낡은 집을 개조한 공간에 들어서 있다. 새로 매장을 낼 때마다 소비자들은 '역시 테라로사'라며 탄성을 자아낸다.

이런 로컬 브랜드가 전국적,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한 배경에는 개인과 로컬의 가치를 중시하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가 있다. 사람들은 대량 공급되는 표준적 제품 대신 자신의 취향에 맞는 공간과 제품을 찾고, 취향을 만족시켜주는 공간에서 약속을 잡는다. 사람이 몰리면서 이런 앵커숍 주변에는 자연스레 공방, 서점, 수제맥주집, 레스토랑 등 매력적인 상권이 형성된다. 강릉 테라로사 커피, 대전의 성심당 빵과 같이 지역을 기반으로 해 전국적 브랜드로 성장한 로컬 브랜드가 많아지고 있다. 머지 않아 스타벅스, 나이키, 이케아와 같이 로컬에서 시작해 글로벌로 성장한 브랜드도 나오게 될 것이다.ㅤ

그동안 지역은 변방에 불과했다. 하지만 인터넷을 비롯한 신기술 덕분에 지역의 낙후성은 오히려 유니크한 차별성으로 재해석되고 있고 이를 소비하려는 도시 소비자를 불러들이는 자산이 되고 있다. 외지 방문객을 매료시키는 로컬의 브랜드가 그 역할을 맡고, 그런 로컬 브랜드를 창조해내는 로컬의 크리에이터들이 곳곳에서 빠르게 자라나고 있다. 강원도의 지역다움을 듬뿍 담은 로컬의 앵커스토어·앵커브랜드를 육성하고 이렇게 성공한 로컬 브랜드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거점을 키우는 것이 강원도의 성장동력을 키우는 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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