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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기고]진정한 지방분권, 지역 역사문화 계승에서 시작

박원재 율곡연구원장

충족·자존감 높여 지방 공동화 극복 율곡학 연구 중요

지방분권이 우리 시대의 화두 중 하나라는 점에 대해 부정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국가 경영의 필수적인 자원들이 수도권으로 과도하게 집중되는 현실이 임계치를 넘어선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수도권 과밀화는 곧 그곳에 몰린 자원들이 빠져나간 곳, 즉 지방의 공동화를 의미한다. 역설적으로 수도권 과밀화가 수도권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다.

지방의 공동화가 초래하는 문제는 여럿이지만 중심은 역시 인구 감소일 것이다. 그리고 이를 고리로 지역경제 붕괴, 자치 동력 약화, 행정서비스 위축, 문화적 소외 등이 복합적으로 뒤따른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보면 이것들은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방의 공동화가 초래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삶의 상실감이다. 수도권 사람들의 삶과 비교할 때 뭔가 뒤처지고 있다는 초조함, 그리고 종국엔 '이등국민'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따른 것이다. 이런 진단이 나름 일리가 있다면 지방분권이 궁극적으로 목표로 해야 하는 과제는 무엇보다 지방 사람들의 삶의 충족감을 회복시켜 주는 일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삶의 충족감은 단순히 경제적 풍요로만 얻어지지 않는다. 보다 본질적인 것은 자기 삶에 대한 자존감이다. 자신에 대한 긍정과 존중은 모든 형태의 바람직한 삶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요소다. 이 대목에서 삶의 충족감은 다시 주체성이라는 가치와 접목된다. 긍정과 존중은 자신의 삶을 다른 이의 시각이 아닌 바로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달성되기 때문이다. 이는 각 지방의 역사문화 자산에 대한 체계적인 보존과 연구가 지방분권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는 배경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빨리 눈뜬 지자체에서는 지역의 역사문화 전통에 대해 일찍부터 정책적인 관심들을 기울여 왔다. 특히 이를 통해 지역민을 하나로 묶는 문화적 동질감의 토대를 마련하려는 광역지자체들의 노력이 부쩍 도드라진다. 조선시대 버전의 지방학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 지역의 조선유학 학파에 대한 자료 수집과 연구를 적극 육성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퇴계학을 근간으로 하는 경북의 한국국학진흥원(안동)을 필두로 남명학에 토대를 둔 경남의 한국선비문화연구원(산청), 호남유학의 정신을 계승하는 광주·전남의 한국학호남진흥원(광주) 그리고 충청지역 기호유학의 맥을 잇고자 최근 건립 중인 충청유교문화원(논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 기관은 광역지자체의 각종 조례 제정 등 지원에 힘입어 자신들의 역사문화 자산을 종합적으로 수집·보존하고 연구·활용함으로써 해당 지역의 정신문화적 수요에 부응하는 데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조선시대 지방학으로 말하자면 가장 광범위한 세를 형성했던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율곡학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율곡학에 대한 관심은 앞의 경우들과 달리 현재 학술적 차원에서만 명맥을 유지할 뿐 그 산실인 우리 지역의 지방학을 살찌우는 원천으로서의 역할은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분권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지향해야 하며 또 그 디딤돌은 어떤 것들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고자 한다면 우리 모두 깊이 되짚어야 할 부분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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