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일보 모바일 구독자 240만
칼럼

[강원포럼]세계 책의 날과 `오래된 미래'

이홍섭 강릉문화재단 상임이사·시인

지난 18일 '책의 도시' 강릉에 낭보가 날아들었다. 정부가 주도한 '책문화센터' 구축 및 운영 지자체 공모사업에 강릉시가 전국 최초로 선정됐다는 발표가 난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한 이번 공모는 지역 거점 책문화센터를 구축·운영해 독서문화 거점을 마련하고 지역 출판 및 독서문화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진행된 것이다. 강릉시는 이번 공모 선정으로 전국 최초의 책문화센터를 구축, 운영하는 지자체라는 명예를 얻게 됐고, 앞으로 정부 주도로 전국적으로 퍼져 나갈 책문화센터의 선도적 모델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책무 또한 안게 됐다.

주목되는 것은 강릉에 구축되는 이 선도적 모델이 시청사 2층에 자리 잡게 된다는 점이다.

원래 강릉시청사 2층은 시장실과 부시장실이 있던 곳으로 민원인들과 가까이하겠다는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관공서 특유의 근엄하고 삭막한 공간으로 변한 지 오래됐다. 지난해 취임한 김한근 강릉시장은 시민들이 가장 가까이할 수 있는 이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조성해 시민들에게 되돌려주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시장실과 부시장실을 8층으로 옮겼고, 마침내 이번 공모사업에 선정됨으로써 이 삭막한 공간을 책과 문화가 숨 쉬는 전국 최초의 책문화센터로 꾸밀 수 있게 됐다.

강릉 책문화센터는 국비 지원 규모로 치면 다리를 놓거나 길을 닦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겠지만 그 상징성과 미래 지향성을 놓고 볼 때는 비교 불가의 가치를 지닌다.

책은 아날로그 시대의 상징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인류의 문명과 문화를 이끌어 오고 또한 앞으로도 이끌어 갈 '오래된 미래'다.

예전에는 책이 도서관 안쪽 서고나 골방 깊숙한 곳에서 곰팡이와 함께 사는 존재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보다 환한 곳에서 문화, 예술과 더불어 사는 존재로 인식이 전환되고 있다. 근엄하고 삭막했던 시청 청사에 들어서는 강릉 책문화센터는 이러한 전환을 앞장서 선도할 공간이라는 점에서 앞으로도 큰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강릉은 예로부터 '책의 도시'였다. 광복 후 최대의 전적 발견이며 1940년 '훈민정음' 발견 이래 최대의 경사라는 평가를 받은 '동국정운' 전 6권 완질본(국보 제142호)이 발견(1972년)된 곳도 강릉이고, 조선 최고의 독서광으로 손꼽히는 율곡 이이와 교산 허균이 태어난 곳도 강릉이다.

'동국정운' 발견 당시 한 교수는 신문 칼럼을 통해 “오백여 년간 이를 보전시킨 공 너무도 큰 즉 그 소장자 스스로 나오시어 이 겨레의 찬사를 받으시라”고 극찬할 정도로 강릉 지역민들의 책에 대한 사랑과 존중은 지극했다. 또한 '자경문'과 '격몽요결' 등을 통해 전개된 율곡의 독서론은 곧 '조선의 독서론'이 됐고, '만 권 책 속의 좀벌레(호서장서각기)'가 되기를 꿈꾼 교산이 경포호숫가 별장에 마련한 호서장서각은 훗날 국내 최초의 사설도서관으로 평가받았다.

4월23일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책의 날'이다. 전국 최초의 책문화센터 구축도시로 선정된 지 1주일여 뒤에 맞는 강릉의 오늘은 따뜻한 커피 한잔과 함께 '오래된 미래'를 풍요롭게 즐길 만한 날이다.

외부 기고는 본보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