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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단상]외손녀의 변심

김성일 전 강릉원주대 교수

수년간 매일 같이 외손녀를 돌보며 함께 많은 시간을 지내다 보니 두터운 정이 쌓였는데 어느덧 초등학교 2학년이 되자 변심의 징조를 보이고 있다. 무엇을 요구하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또는 집에 혼자 남게 될 때는 말도 잘 듣고 애교도 부리지만, 부모와 같이 있게 되면 날 본체만체하며 “이제는 할아버지 집에 가!” 또는 “할아버지, 우리 집에 오지 마!”라고 하며 홀대하기도 한다. 물론 친숙하다보니 장난기가 섞여 일부러 그리 말하는 면도 있다.

가끔 야단을 치면 “할아버지는 우리 부모가 아니잖아!”라고 반발할 때도 있다. 그러나 다음 날에는 까맣게 잊고 친근하게 굴기도 한다. 내가 외손녀를 대하는 모습이 마치 사이비 교주를 모시는 것 같다면서 버릇이 나빠진다고 딸이 투덜거릴 때도 많다.

외손녀는 지난해 초등학생들 사이에 '떼창'을 이끌어 내며 '초통령'이란 수식어를 들었던 7인조 남성 그룹 '아이콘'이 부르는 노래인 “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나 지우지 못할 추억이 됐다…”를 지금도 이따금 읊조리며, 좋아하는 친오빠와 비슷하게 생긴 자기 반 짝꿍에게 사탕도 갖다줬다고 한다. 아직 어리다고 해도 외손녀가 먼저 호감을 표시하는 적극성에 은근히 화가 나기도 한다. 내게는 이제 안기는 것은 고사하고 가까이 다가서는 것마저 싫어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물론 외손녀의 배신은 내가 자초하는 면도 있다. 아무리 손녀를 좋아해도 아이들의 생동감 넘치는 활력에 적극 호응하기 어렵고 같이 어울려 놀 수 없는데도 머뭇거리면서 근처에 얼씬거리고 있으니 귀찮아할 만도 하다.

초등학교 저학년일지라도 키즈폰이나 스마트폰을 휴대하고 있으면 부모 없이 자유롭게 다니기도 하지만, 놀이터에는 큰 아이들이 공을 차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도 많아 사고의 위험을 염려해야 할 경우도 있다.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도 서행하지 않는 차가 많아 불안한 마음에 등하교시 동행하는 것도 외손녀가 이제는 사양한다.

외손녀의 자율성과 또래에 대한 관심 그리고 주변에 대한 호기심이 증가하는 것을 돌연한 변심으로 여긴다면 내 과욕이 투영됐거나 서운함만 우선하는 이기적인 생각이 큰 탓일 것이다.

그렇지만 “할아버지가 제일 좋다”고 다짐하던 손녀가 “뻥이었어. 그냥 보통이야”라고 말할 때면 예상보다 빨리 내게서 마음이 떠나는 것 같아 서운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나는 너를 엄청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어쩐지 내가 버림받는 느낌이 든다. 나중에 이리 될 줄 예상하고 가급적 정이 깊게 들지 않도록 거리를 두자고 스스로 다짐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으나 뜻대로 될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유치원 시절에는 외손녀가 너무 보고 싶어서 수업 중에 찾아가 창 너머로 얼굴만 잠깐 보고 나온 적도 있다.

짝사랑에 가슴 졸이며 일방적으로 기대하면 실망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 비록 예상보다 짧은 기간이나마 손녀에게서 받은 즐거움으로 만족하며 이제 싹트는 자립심과 성장 욕구를 당연히 격려해 줘야 할 것으로 자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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