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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금요칼럼]레고랜드가 아니고 중도다

조창호 영화감독

아직 몽상가처럼 꿈꿀 수 있던 시절인 30대 초반에서 40대 초. 매일매일을 정치 뉴스 속에 살면서 정치인이나 정책에 대해 품평하고 때로 행동에 나섰던 나에게 영화 말고 정치를 해 보는 게 어떠냐는 주변의 권유가 있곤 했었다. 대통령 선거가 있던 어느 해인가는 대통령 출마 안 하냐는 말을 듣기도 했었는데 내가 수락하면 다들 참모로 나서겠다는 투의 간절한 눈빛...은 아니었고 대개는 영화나 열심히 하라는 핀잔이었을 것이다. 시나리오를 쓰다가 막히면 이 나라를 어찌할까 식의 상념에 젖어들면서 이런저런 공약을 구상하곤 했었는데 선거철도 아닌 요즘 그때의 일이 문득 떠오르곤 한다.

당시의 공약은 대략 이랬다. 국민 통합을 하지 않는다(모든 후보가 국민 통합을 이루겠다고 하니, 나는 반대로). 토지는 국유화한다. 다만 토지면적을 전체 인구로 나눴을 때의 면적만큼만 개인이 소유할 수 있으며 임대는 가능하나 매매는 원칙적으로 불허한다. 국민이 인간다움을 영위할 수 있도록 주거, 의료, 교육은 국가가 책임진다. 아울러 생계를 포함하는 어느 정도의 품위유지비를 지급한다. 여기서 '어느 정도'가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건지가 중요하겠지만 내가 대통령이 된 것도, 앞으로 출마할 것도 아니니 여기선 더 이상 따지지 않기로 한다. 요체는 태어난 이상 놀기만 해도 어느 정도는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진다는 거다. 그런데, 예산은?

그때는 그저 바람이었다면 요즘은 그게 가능할 것처럼 느껴진다. 국가도 강원도도 춘천시도 공약을 실현 할 수 있을 만큼 돈이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돈이 많으니까 저렇게 쓰지…. 타당성은 고사하고 정확한 계산도 없이 진행되는 각종 사업들. 예를 들어 사대강사업. 억지 의미를 붙인 행사 자체를 위한 지원금들. 공공의 이익과는 거리가 먼, 결국은 당사자의 주머니가 우선시되는 보조사업들. 밀당으로 결정되는 수백, 수천의 쪽지 예산들. 그래서 내가 아는 퇴직 공무원의 표현을 빌리면 '눈·먼·돈·들'.

그러나 돈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무모하거나 실력이 없는 행정을 보는 일은 스트레스다. 인간의 양심이 무너진 증거들이 당초예산서 곳곳에 은폐돼 있고, 뒤늦게 추가경정예산서에 승차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어느 정도의 품위 있는 삶은 국가가 보장할 테니,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을 특별하게 충족하는 일들은 각자 알아서 하라고 하면 안 될까. 예산 항목을 단순화시켜서 비양심이나 사기가 들어설 틈을 줄이자는 것이다.

나의 생각은 망상에 가깝고 행정은 필연적으로 이렇게 고도화됐을 것이다. 성실히 봉사하는 공무원과 정치가가 떠올라 미안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말해야만 한다. 시민도 행정도 자기 돈 아니라고 엉뚱한 짓 하지 말자고.

현재 행정과 관련된 가장 큰 스트레스는 레고랜드에 관한 것이다. 백번 양보 한다고 해도 그렇게 자신만만한 레고랜드를 넓디넓은 강원도의 땅 중에 하필이면 중도 선사 유적을 깔아뭉개고 지어야 하는가. 1만년을 견뎌 온 유적의 시간보다 쌓았다 부서뜨리고 쌓았다 부서뜨리는 레고의 시간을 선택한 배경에는 그저 조금이라도 더 부자 됨을 최우선으로 치는 우리의 욕망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그걸 최문순 행정이 앞장서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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