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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발언대]소방관의 아픔 달래줄 `소방전문복합치유센터'

박영민 횡성소방서 방호구조과장

28년 전의 일이다. 대학 야구동아리에서 경기를 마친 뒤 이동하는데 차에 자리가 부족했다. 농담 반 진담 반 트렁크에 탈까 이야기를 꺼냈고 친구들은 웃으며 나를 트렁크에 태웠다. '쾅' 하고 문이 닫히는 순간. 비좁고 어두운 트렁크 속에서 예기치 못한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됐다.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들은 차를 출발 시켰고 나는 트렁크 안에서 주먹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두드리며 온 힘을 다해 살려달라고 절규했다. 내 발로 들어간 트렁크였는데 말이다.

그 후로 나는 긴 터널을 지나거나 비행기를 탈 때, 심지어 군대에서 화생방 교육을 받지 못할 정도로 밀폐된 곳이면 어김없이 올라오는 공포를 느끼며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

나중에서야 이것이 바로 '폐소공포증'이라는 일종의 공황장애라는 것을 알게 됐다. 초기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최근에야 문제 해결법을 스스로 찾게 됐다. 그 후 지금도 참혹한 재난현장에서 각종 사고 장면을 목격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육체적·정신적 아픔을 겪는 동료들이 치유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헌신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

지금 이 시간에도 대한민국 소방관들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기의 목숨을 담보로 재난현장으로 달려간다. 오늘은 지옥과 같은 화마와 싸우고 내일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참혹한 사고현장에서, 그 다음 날은 또 어떤 재난현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기에 우리 소방관들은 한순간도 긴장을 끈을 놓을 수가 없다.

그러나 소방관은 슈퍼맨이 아니다. 평범한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빠이고 부모의 아들이다. 무자비한 재난현장에서 무너진 우리 소방관들의 마음은 누가 보살펴 줄 것인가?

2023년 소방관의 심신건강을 위해 소방전문 복합치유센터가 건립된다. 소방청 독립과 소방공무원 국가직화의 가장 큰 상징적 의미이기도 하다. 언제든지 쉬고 싶을 때 내 집처럼 드나들 수 있는 치유센터를 전국 5만5,000여 소방공무원이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현장 출동으로 장애를 갖게 된 직원이 털어놓은 “저는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파요”라는 말이 생생하다. 나의 지난날 아픔이 외상 후 성장이라는 값진 선물이 돼 돌아왔듯 고통 받는 동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일에 소명을 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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