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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알고 계십니까]모든 산업분야의 안전지킴이 '체크리스트' 위력

진성현 가톨릭관동대 항공운항서비스학과 교수

사람들은 자신의 기술과 경험을 믿는다. 그것이 자칫 실수로 이어지는 오만과 자만이 될 수 있다. 일찍이 로마 철학자 키케로는 실수하기 때문에 사람이라고 설파했다. 불완전한 기억력과 정신적인 허점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실수를 저지르게 마련이다.

201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공항에 아시아나 비행기가 착륙 직전 활주로 방파제와 충돌해 승객 2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비상 탈출했다. 당시 미국 유력 일간지 유에스에이투데이는 사고 소식을 전하며 '인간은 비행기로 하늘을 날면서 여전히 실수를 일으킨다'라고 신문 제목을 달았다.

미국 외과의사이자 교수인 아툴 가완디는 저서 '체크리스트 선언서'에서 인간의 실수를 막아주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체크리스트'를 강조했다. 그는 수술 사망자를 줄이기 위한 연구 끝에 수술실용 체크리스트를 제작해 전 세계 8개 병원에서 활용했더니 합병증 비율이 36% 떨어지고 환자 사망률은 47%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현재 이 체크리스트는 세계보건기구(WHO)에 공식 채택됐다.

체크리스트가 세상에 처음 등장한 것은 항공 분야에서다. 가완디의 체크리스트도 비행기 제작사 보잉으로부터 배운 결과다. 보잉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획기적인 기술로 성능이 뛰어난 B-17 폭격기를 개발했다. 이 신형 폭격기 시험비행에서 베테랑 조종사 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원인은 조종사의 실수였다. 기능이 많아진 복잡한 신형 비행기를 다루는 데 조종사가 실수로 중요한 기기 조작을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보잉은 이 사고를 계기로 조종사의 뛰어난 조종 실력보다 실수에 의한 인적 요인에 중점을 두고 실수 예방을 위한 최초의 체크리스트를 만들어냈다. 체크리스트는 승무원이 확인해야 할 항목을 기억에 의존할 필요가 없도록 설계됐다. 오늘날에도 조종사들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체크리스트 확인 절차다.

체크리스트는 항공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다. 가완디가 의료분야에 체크리스트를 도입했듯이 안전을 취급하는 모든 산업분야에 적용할 필요성이 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안전관리가 중요한 시대다. 가완디는 '체크리스트'가 약보다도 환자를 더 많이 살려냈다고 밝혔다. 인간이 스스로 실수 앞에 겸손하며 체크리스트를 받아들일 때 안전으로부터 행복과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체크리스트에 생명을 구하는 힘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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