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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발언대]'관료적 패러다임 vs 공동체적 패러다임'

이범용 한전 평창지사장

2019년 4월 고성·속초지역 산불이 발생했다. 안타깝게도 1,500명 이상의 주민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180여 세대가 임시주택에 머물며 두 번째 겨울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잘 형성된 국가였다면, 지금쯤은 피해 주민들을 삶의 터전으로 완전히 복귀시키고, 심리 상담을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피해지역은 새로운 나무를 심어 후손들에게 조금은 덜 미안한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었을 것이다.

산불의 총 피해액은 1,7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한국전력공사는 2019년 12월 산불피해보상특별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한 1,039억원을 보상함으로써 책임을 다하려는 했다. 그런데 2020년 1월 행정안전부에서 395억원의 구상금을 청구하겠다고 입장을 밝히면서 갈등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원인제공자가 책임을 회피할 때 정부가 먼저 보상하고 구상청구하기 위한 규정을 근거로 한 것이다.

이에 한전은 보상금의 약 50%를 지급한 상태에서 멈췄다. 한전은 시장형 공기업으로서 양쪽으로 보상할 경우 주주에 대한 책임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정부는 구상권 청구를 하지 않으면 재량권 일탈 또는 직권남용 등 법치 행정에 위배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이 문제인가? 갈등의 당사자를 엄격히 구분한다면 한전 외에 행정안전부, 강원도, 속초시, 고성군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시각으로 보면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다 같은 정부이고 또 정부재정이다. 대표성을 놓고 본다면 주민들과 가장 가까운 기초단체가 2곳 이상이기 때문에 강원도에 대표성이 있으며, 행정안전부는 상급기관의 지위에 있다. 따라서 갈등 해결을 위해서는 강원도의 의견이 존중돼야 한다. 때로는 관료제적 패러다임보다 공동체적 패러다임으로 복잡한 사회문제를 당사자 간에 합의하고 규칙을 만들어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강원산불 구상권 청구 협의를 위한 협의체'가 마련한 합의안을 행정안전부가 거부했다. 강원도는 행정안전부를 설득해 보겠다고 한다. 법 해석은 자기가 속한 조직의 이익이 아니라 주민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하며, 공동체가 만든 합의안이 법 해석의 기준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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