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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법정칼럼]봄날 타령 '탐매여행'

차영욱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판사

봄이 찾아왔음을 가장 빨리 알리는 꽃이 '매화'라고 한다. 겨우내 추위에 얼어붙어 있던 대지에서 홀로 단아한 꽃을 피워내 봄을 알리며 은은하고 매혹적인 향기로 만물의 소생함을 알려주는 매화는 탐매(探梅)여행을 떠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옛 선인들도 이런 봄날에는 모든 것을 제쳐두고 '꽃 중에 꽃'인 탐매여행을 떠났다고 하고 특히 조선시대 실학자 다산 정약용도 매화 감상을 즐기며 가까운 지방에 사는 15명으로 결성돼 있는 죽란시사(竹欄詩社)라는 모임을 만들어 시회(詩會)를 열었다고 한다.

2007년 문화재청은 강릉 오죽헌 율곡매(천연기념물 제484호), 구례 화엄사 매화(천연기념물 제485호), 장성 백양사 고불매(천연기념물 제486호), 순천 선암사 선암매(천연기념물 제488호)를 한국 4대 매화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바 있다. 이 중 조선 초기 건축된 강릉 오죽헌이 들어설 당시인 1400년경 식재된 율곡매는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직접 가꾼 나무다. 율곡매는 연분홍 꽃을 피우는 홍매로서 은은한 매향이 오죽헌 경내에 퍼져 정취를 더한다. 나무의 높이는 9m이며 줄기 밑동으로부터 약 90㎝의 높이에서 두 줄기로 갈라져 자란다.

봄기운이 느껴지는 3월의 어느 날 이 율곡매를 보기 위해 오죽헌으로 향했다. 오죽헌은 신사임당이 어린 시절부터 살았던 곳이고 율곡 이이를 낳아 기른 곳으로 검은 대나무가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서 '오죽헌(烏竹軒)'이라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오죽헌 사랑채, 기둥의 주련글씨는 추사 김정희가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오죽헌을 다른 이유가 아닌 율곡매를 보기 위해 처음 방문한 것은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었다.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심고 가꾼 율곡매는 몇 백 년이 지나도록 꽃을 피우고 있었다. 비록 만개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오랜 세월을 견디어 낸 자태는 사람의 마음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모란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국화처럼 오래가지도 않으나 생명력이 소진된 듯 보이는 가지에서 잎도 채 나기 전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그 모습에서 단순한 아름다움 이상의 삶에 대한 교훈을 얻게 되는 듯하다.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뒤틀린 가지를 오랜 세월 삶의 풍파에 시달리면서 빚어진 모습이라고 본다면 연분홍 꽃잎은 세파 속에서도 끊임없이 솟아나는 삶에 대한 열정과 인고(忍苦)의 결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율곡매를 바라보면서 필자도 삶을 살아가면서 경험했던 여러 가지 일들로 깎이고 다듬어져 그 속에서 지혜와 현명함이라는 열매를 얻게 된다면 사람들의 송사를 더 바르고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많이 부족한 필자에게도 언젠가는 이러한 연륜 속에서 묻어나오는 지혜와 현명함이 연분홍 꽃잎과 같이 그 빛과 향을 뿜어내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은 겨울의 추위가 봄의 태동을 시기하는 듯한 이 무렵, 이 시간 속에서 율곡매를 보고 느낀 감정을 퇴계 이황의 시로 대신하고자 한다.

梅花詩(매화시)

-退溪 李滉(퇴계 이황)

一樹庭梅雪滿枝(일수정매설만지)

마당의 매화나무 가지마다 눈 쌓였고

風塵湖海夢差池(풍진호해몽차지)

티끌 같은 속된 세상 꿈마저 어지럽네

玉堂坐對春宵月(옥당좌대춘소월)

옥당에 홀로 앉아 봄밤 달을 마주하니

鴻雁聲中有所思(홍안성중유소사)

기러기 울음 따라 내 마음도 날아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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