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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월요칼럼]역발상 은퇴설계

권도형

포탄희량(抱炭希凉). 숯불을 안고 있으면서도 서늘하기를 바란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원하는 것과 행동이 모순된 상황을 말한다. 은퇴설계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이 단어가 떠오를 때가 종종 있다. “은퇴 후에도 활기차게 생활하며 돈도 더 많이 벌고 싶다”는 희망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기존의 은퇴 관념에 사로잡혀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 분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옭매는 은퇴 관념이란 무엇일까? 나는 세 가지가 대표적이라고 본다. 첫째는 ‘퇴장(退場)'의 관념이다. 은퇴는 인생의 무대에서 내려오는 과정이라는 관점이다. 둘째는 ‘소비(消費)'의 관념이다. 은퇴 후는 이때까지 모아 둔 돈을 쓰면서 사는 시기라는 믿음이 존재한다. 셋째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의 관념이다. 은퇴 후 노후에는 삶을 정리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시각이 있다.

이러한 소극적인 은퇴 관념은 대부분의 한국 은퇴자나 예비 은퇴자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 결과 은퇴 후 노후의 삶의 모습을 소극적으로 그리며, 이 그림에 맞춰 은퇴 준비를 하곤 한다. 적극적인 희망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직업군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60~65세에 정년을 맞는 한국의 은퇴자들은 대체로 여전히 젊고 건강하며 스마트하다. 새로운 삶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전통적인 은퇴 관념에 갇혀 도전 정신을 발휘하지 못한다.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기존의 은퇴 관념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원하며 그에 맞춰 잘 준비한 사람에게는 충분히 멋진 삶의 여건이다. 하지만 여전히 적극적인 삶과 도전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맞지 않는다. 새로운 삶을 꿈꾼다면 낡은 관념을 버려야 한다.

이런 분들에게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첫째, ‘사라지고 물러난다'는 ‘은퇴(隱退)'의 옛 뜻은 버리고 타이어를 갈고(Retire) 새롭게 출발하는 적극적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둘째, 은퇴 후에도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으며, 심지어 큰 자산을 이룰 기회가 남아 있음을 의식해야 한다. 셋째, 고향으로 돌아가 유유자적 지내며 삶을 정리한다는 목가적인 낭만을 버리고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다시 들어가는 게 바람직하다.

은퇴 후 개발도상국으로 사업 이민을 떠난 분과 자주 소통한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신음하고 있지만, 그는 비교적 잘 지낸다. 그가 떠날 때 만류하는 사람이 많았다.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이라는 게 위험천만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는 “어중간한 상태로 국내에 머물렀다면 하릴없이 늙어 갔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막상 나오니까 무궁무진한 기회가 보였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 경제 강국을 모두 거쳐 왔습니다. 개발도상국과 그 국민이 어떻게 변해가고 그 과정에 무엇이 필요할지, 그렇다면 무슨 사업을 할지가 확연히 보입니다.” 나는 이분께 큰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 연구소의 컨설팅에서 개발도상국 재취업과 사업 이민을 중요한 영역으로 발전시킬 계획을 갖게 되었다. 코로나 19 팬데믹도 결국은 지나갈 것이며 세계는 다시 활짝 열릴 것이다. 적극적인 도전에 열정을 불사르고자 하는 은퇴자라면 이제 역발상을 하자. 낯선 곳에서 새로운 일을 벌이고 남다른 성공을 이룰 포부를 키우자. 이것은 꿈이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지금 한국인들이 이루어내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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