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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권혁순칼럼]병사월급 200만원이 한가하게 들리는 이유

“평화는 외침으로 정착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과 강력한 힘이 담보돼야 가능한 일”

대선 후보들, 북한 핵 해결공약 왜 안하나

왜(倭) 함대가 1876년 정월 강화도로 밀려왔다. 조선 조정은 그 형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했다. 초병들이 조정에 보고했다. “검은 연기를 뿜으며 화륜선이 일렬종대로 올라갔습니다. 기러기처럼 빨라 곧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초병들의 상황 보고를 받은 조정은 쩔쩔맸다. 한반도의 운명은 그렇게 시작됐고 지금도 그렇다. 밑으로는 일본, 위로는 중국과 러시아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그 사이에 낀 한반도, 특히 대한민국은 북한 핵으로 늘 안보 위기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숙명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국가안보, 절체절명의 사안

국가의 안보는 국민의 삶과 죽음이 걸린, 적당히 처리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사안이다. 그런데 북한이 조롱과 위협을 해도 유감 표명 이외엔 뚜렷한 대응방안이 없다. 북한은 지난 14일 열차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한 지 사흘 만에 17일 발사체를 또 쏘아 올렸다. 지난 5일 새해 첫 무력시위를 시작으로 벌써 네 번째다. 북한에 대한 ‘평화 구걸'이 이들을 더욱 오만하게 만들고 대북관의 혼란을 유발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협상용이지 전쟁용이 아니라는 논리, 북한의 도발은 협상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지 위협용이 아니라는 논리, 궁극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는 가능하다는 논리 등 북한의 안보 전략 및 행태를 가능한 한 긍정적·낙관적으로 해석하려는 논리가 만연하고 있다. 만약 이 모든 논리가 대북관의 오류, 즉 북한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기인한 것이라면 그 결과는 치명적일 것이다. 이제 ‘안보불감증'이 ‘안보망각증'이 돼 가는 현실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새해 벽두에 탈북민에게 강원 동부전선 철책이 뚫리는 사건, 철조망 넘는 장면이 감시카메라에 찍히고 경보음이 울렸는데도 눈뜨고 놓친 사건은 무엇을 의미하나. 북한 핵과 안보를 말하면 세상 돌아가는 물정 모르는 ‘수구 보수'라고 폄훼하는 세태다. 안보 문제는 바로 알고 대처해야 국민이 안전하다. 북한의 도발을 이끄는 인물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대북정책 원점부터 재검토

김 위원장은 2020년 3월21일 미사일 도발 현장을 직접 참관했고, 2일과 9일 도발 때는 장거리포병부대의 화력타격훈련을 지도했다. 김 위원장은 2018년 판문점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에게 “새벽 잠을 설치지 않도록 내가 확인하겠다”고 했다. 그런 인물이 도발을 일삼는데도 언제까지 평화 공세만 할 것인지 대북정책을 원점부터 재검토해야 할 때다. 철저한 상황관리로 비핵화와 평화협력을 다시 궤도에 올려놓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평화는 외침으로 정착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과 힘이 담보돼야 가능하다. 북한이 초음속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대선이 코앞인 지금 후보들의 북핵 해결 공약은 보이지 않는다.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3·9 대선에 나서는 여야 후보가 내놓은 ‘병사 월급 200만원' 공약이 한가한 소리로 들리는 이유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뚜렷한 대안도 없다. 대선에 이기기 위한 선심 공약이라는 비판이 그래서 나온다. 진정한 국가 리더십은 북한 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나라가 처한 현실을 냉철히 평가하고, 이를 국민에게 설명하며 설득해 북한 핵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강한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주먹만 키운다고 강한 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 주변을 관찰할 수 있는 밝은 눈과 귀, 유연하고 신속한 대응을 촉진하는 신경과 혈관, 무엇보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겠다는 강인한 생존 의지로 충전된 뇌와 지혜가 있어야 한다. 지금은 그 뇌와 지혜를 바탕으로 우리 민족의 재앙인 북한 핵의 먹구름을 마침내 걷어낼 수 있느냐, 아니면 또다시 북한의 전략에 말려들어 다람쥐 쳇바퀴를 돌릴 것이냐 하는 기로다. 북한 핵을 끌어안고 있는 한 ‘진정한 평화'는 올 수가 없다. 대선 후보들은 북한 핵 해결에는 관심 없고 선거에 이길 주판알만 튕기고 있다. 146년 전 화륜선 앞에 조정은 쩔쩔맸다. 대선 후보들의 북한 핵 해결 공약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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