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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일반

[피플&피플]일제 맞서다 체포돼 옥고치른 춘천고 학생중 유일한 생존자

최항규 강원대 총동창회 고문

당시 일본인교사 차별에 대응

비밀조직 만들어 활동하기도

광복이후 춘천농대 2회 입학

"현재 강원대 상상 초월 발전

초대 함인섭 학장 선양 소원"

일제강점기 말 춘천고에서 일본인 교사와 학생들의 한국인 비하에 맞서 대응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른 10여명 중 유일한 생존자인 최항규(91) 강원대 총동창회 고문.

최 고문은 인제군 상남면의 내린천 상류에 있는 첩첩산중의 산골짜기 마을에 홀로 살고 있었다. 차량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길을 따라 2㎞가량 들어서니 최 고문의 보금자리인 아담한 주택이 계곡 인근에 자리잡고 있었다.

90대의 고령이지만 아직 안경도 쓰지 않고 글을 읽는다고 한다. 호흡기 질환으로 가끔 산소마스크를 사용한다고 밝혔지만 구순(九旬)에도 건강을 유지하고 있었다.

최 고문은 강원대 역사의 산증인이다. 최근 개교 72주년을 맞은 강원대와 역사를 같이하며 수많은 후배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한 그를 만났다.

양구 출신으로 1942년 당시 5년제인 춘천중(현 춘천고)에 입학한 그는 일본인 교사의 차별과 멸시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인 교사와 학생들이 가입한 비밀조직을 만들었다. 시비 과정에서 벌어진 싸움 탓에 광복을 한 해 앞둔 1944년 춘천경찰서 유치장에 들어갔다. 당시 최 고문 등 조직원들은 서울로 압송돼 4~10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수감 중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문을 당했고, 구속 학생 모두 퇴학을 당했지만 8·15 광복 이후 복교 조치돼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지요.”

춘천농대 1회 입학생으로 알려진 그는 “미 군정으로 춘천중이 6년제로 바뀌면서 한 해 늦게 들어갔지. 그래서 2회 입학생으로 기억하고 있어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춘천농대를 다닌 그는 광복 이후와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어수선한 환경에서 제대로 공부할 수 없었다고 회고한다. 축구 특기생이다 보니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탓에 담당교수의 도움으로 졸업 논문을 작성할 수 있었다.

그에게 모교인 강원대는 놀라움의 상징이다.

“재학 당시에 비해 시설과 규모, 교육의 질 등 모든 부분에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발전했고, 수도권 어느 대학과 비교해도 뒤질 것이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어요.”

한 가지 바람을 남겼다. 모교의 현재가 있기까지 함인섭 초대 학장의 기여가 상당히 크다는 것. 함 학장이 농림부장관 당시 홍천의 적산 산림을 강원대 재산으로 등록하는 등 학교 발전에 남다른 애정을 보인 만큼, 선양사업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분(함인섭 초대 학장)이 현재 춘천의 공동묘지에 묻혀 계세요. 이 분을 홍천 연습림으로 모셔 후배들이 어려운 여건에도 학교 발전을 위해 애쓴 함 학장님의 업적을 기렸으면 좋겠습니다.”

총동창회 총회 때마다 이 같은 건의를 꾸준히 제기하지만, 아직 충분한 여론이 형성되지 않은 점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어쩌면 우리 동문의 뿌리를 내리게 해 준 은인에게 후배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우라고 생각해요.”

70년 넘게 동문회를 지킨 최 고문의 마지막 외침일 것이다.

인제=박기용기자 kypark901@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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