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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

[언중언]`여제(女帝) 이상화'의 눈물

동계올림픽 피겨가 열렸던 2010년 2월26일. 일본 도쿄 도심 TV 앞에 모인 군중의 광경이 한 언론에 스케치됐다. 아사다 마오의 연기가 끝나고 결과가 확정됐을 때 은메달을 축하하는 박수는 없었다.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꾼 것은 아사다의 눈물이었다. 참고 참다가 터져 나온 진한 눈물이었다. “길었다고 생각했지만, 순식간에 끝나버렸다”는 아사다의 말은 수만 가지 욕심을 안고 순간을 살아가는 인생을 대변했다. 은메달에 대한 일본 사회의 박수가 시작됐다. 총리와 장관들이 “김연아도 잘했지만 아사다도 잘했다”고 격려했다. ▼금메달이 아니면 몽땅 루저로 싸잡는 천박한 일등주의보다 올림픽 정신은 그래서 숭고하고 아름답다. 아사다의 눈물이 올림픽 눈물 레이스의 대미를 장식했다. 아사다가 없었다면 김연아의 금메달은 지금처럼 빛났을까. ▼빙속 여제(女帝) 이상화가 지난 18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장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여자 500m에서 은메달을 확정지으며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며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아쉬움과 후련함, 그간의 고생에 대한 기억 등이 합쳐졌다. 한번 터진 눈물샘은 연습 트랙을 한 바퀴 도는 내내 멈추지 않았다. ▼금메달을 딴 일본 빙속의 간판스타 고다이라 나오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친구이자 라이벌인 이상화에 다가가 서툰 한국어로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녀를 안고 “이상화 잘했어!” 고다이라는 이상화가 그동안 누구보다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상화가 엄청난 부담감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며 “존경한다”고 전했다. 앞으로도 “이상화를 우러러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화가 있었기에 고다이라가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치열하게 서로 필요한 존재인가 보다.

권혁순논설실장·hsgw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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