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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나목(木)'과 목탄화(木炭畵)

가장(家長), 생계를 꾸려야 했기에 미군 매점에서 초상화를 그렸다. 그나마 그림 그리는 재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것도 독학으로 익힌 솜씨다. 하지만 그는 '진정한, 진실한 화가가 돼야 한다'는 일념으로 황량한 풍경, 서민들의 일상을 담아내는 작품에 열정을 쏟았다. 박완서 선생의 등단작, 소설 '나목(木)'에 나오는 화가 옥희도씨다. 그 실제 인물이 '국민화가'라고 일컫는 박수근이다. ▼지난해 여름, 파주출판도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온통 '달빛 세상'이었다. 'Moonscape 달빛 : 이재삼' 전시였다. 광활한 벽면을 꽉 채우다시피 한 초대형 목탄화의 기운이 무더위를 식혔음은 물론이다. 전시 개막식 사회자로 마이크를 잡은 홍지웅(출판사 '열린책들' 대표) 관장은 “작업실을 찾아가서 전시를 요청했다”며 흐뭇해했다. ▼홍 관장은 이재삼에게 '가장 존경하는 작가'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대학 시절 은사시더라고 소개했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이는 서양화가 한만영 선생이었다. 빼어난 묘사(描寫)로 정평이 나 있는 그는 이재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보시다시피 이런 작가입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어진 말은 더 의미심장했다. “고생했군. 이만하면 됐다.” ▼오늘(15일)이 박수근 화백 생신날(음력 1월28일)이다.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에서 제3회 박수근미술상 시상식이 열린다. 수상작가가 이재삼(58)이다. 영월 출신, 강릉대학 미술학과를 나와 전업작가로 살아오며 겪었을 고충·역경이 감동을 더하게 한다. 어둠 속에서 우러나는 '달빛 풍경'이 한국인의 심성을 대변하듯 그의 작품세계가 곧 생의 궤적이다. '박수근미술상 수상작가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전하자 들려온 목소리는 무덤덤했지만 의지는 굳건했다. “그래, 후배 작가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상이라고 여기겠다.”

용호선논설위원·yonghs@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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