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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평양 방문'의 역사

김구 선생은 우여곡절 끝에 1948년 4월19일 아침 38도 선을 넘었다. 이날 오후 6시 평양 모란봉 극장에서 개최되는 김일성 주석과의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예나 지금이나 남측의 고위급 인사가 평양을 방문하는 것은 논란이 뒤따랐다. 당시 김일성 주석은 김구와 김규식 선생을 초청하기에 앞서 평양에 온 남측의 특사에게 “우리가 통일을 위해 만나 이야기하는 데 아무런 조건이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온건 성향의 김규식 선생은 미국 하지 중장의 만류를 감안해 사유재산제도 승인 등 5개 조건을 김일성 주석이 승인하면 북행(北行) 하겠다고 선언했다. 김일성 주석은 즉각 5개 항을 승인했다는 암호를 평양방송을 통해 알려왔다. “자주통일은 이 길밖에 없다”며 김구 일행은 당일 북행 저지를 위해 경교장(京橋莊)을 에워싼 우익청년과 학생을 간신히 따돌리고 뒷담을 넘어 평양으로 향했다. 김구 선생의 남북연석회의 참석을 놓고 당시 평가는 엇갈렸다(남성욱, 평양정상회담의 추억). ▼올 들어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18일 열린다. 선발대는 이미 평양에 갔고 방북 대표단 면면도 발표됐다. 방북 대표단에 경제계 인사들이 많이 포함됐다. 4대 그룹 대표를 비롯해 기업인들이 대거 동행한다. 판문점에서 열린 두 차례 정상회담과 달리 공식 환영행사를 필두로 격식을 갖춘 다양한 일정이 2박3일간 진행된다. ▼남북 두 정상은 앞선 회담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며 신뢰를 쌓았다. 지금은 2000년, 2007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 때처럼 과감한 만남 자체에 연연하고 감격할 시기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평양 방문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하고 평가할까. 4·27 판문점 선언에서 약속한 '완전한 비핵화'에 마침표를 찍는 일이 말해 줄 것이다.

권혁순논설실장·hsgweon@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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