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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

[언중언]`가을편지'

'하늘 향한 그리움에/ 눈이 맑아지고/ 사람 향한 그리움에/ 마음이 깊어지는 계절// 순하고도 단호한/ 바람의 말에 귀 기울이며/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용서하며/ 산길을 걷다 보면// 툭, 하고 떨어지는/ 조그만 도토리 하나// 내 안에 조심스레 익어가는/ 참회의 기도를 닮았네.' 이해인 수녀의 시 '가을편지'다. 번잡한 세상사 훌훌 털고 온갖 시름도 다 내려놓을 수 있는 시 한 편이 생각나는 때다. ▼어느 날 아침 쌀이 떨어져서 아내는 아침을 굶고 출근했다. 백수 남편은 점심은 어떻게든지 지어놓겠다고 말했다. 아내가 점심 시간에 집에 돌아와 보니 신문지로 덮인 밥상이 놓여 있었다. 따뜻한 밥 한 그릇과 간장 한 종지, 그리고 '왕후의 밥, 걸인의 찬, 시장기만 속여두오'라는 백수 남편의 쪽지. 김소운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에 나오는 신혼부부의 이야기다. ▼'아침에 안개 끼고 밤이면 이슬 내려 백곡은 열매 맺고 만물 결실 재촉하니, 들 구경 돌아보면 힘들인 보람 나타난다.' 가을을 노래한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8월령의 한 구절이다. 200년이 지난 지금도 농사짓는 사람에게 결실은 가장 큰 보람이자 행복이다. 지난 여름 강렬했던 폭염도, 무섭던 태풍도 수확의 기쁨을 이길 수는 없다. 조금 힘들고 불편하고 부족하더라도 농부의 마음으로 사는 것은 어떨까. ▼본격 회담에 앞선 남북 두 정상의 짧은 환담. “판문점의 봄이 평양의 가을로 이어졌으니 이제 정말 결실을 풍성하게 맺을 때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우리 인민들, 북과 남의 인민들의 마음, 기대를 잊지 말고 우리가 더 빠른 걸음으로 더 큰 성과를 내야 되겠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작가 정비석은 “가을은 사람의 생각을 깨끗하게 한다”고 했다.

박종홍논설위원·pjh@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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