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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

[언중언]가을, `추수정신'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 임진나루 옆 절벽 위 화석정(花石亭)에 걸린시문이다. 외가 강릉 오죽헌에서 나고 자란 율곡 이이가 8세 때 본가로 와 이 정자에 올라 정취를 필설한 '팔세부시(八歲賦詩)'다. “숲에는 가을이 저물어 가매 시인의 시정은 그지없어라. 물빛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단풍은 햇빛 따라 불타오르는구나. 산에는 둥근달이 솟아오르고 강에는 끝없는 바람 어려라.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지 저녁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소리.” ▼“만추의 서정을 정갈하고 단아하게 그려냈다”는 것이 평자들의 견해다. 유성룡의 '징비록(懲毖錄)'에 이 정자의 비애가 적혀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의주로의 피란길에 오른 선조 일행이 이 강가에 이르렀다.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이미 날은 저물었다. 강을 건너기 위해 화석정을 태워 뱃길을 밝혔다는 것이다. 훗날 중건했으나 6·25전쟁 때 또 소실, 주민들이 거듭 세워 강 건너 북녘땅을 조망하게 됐다. ▼3차 남북정상회담 결과로 '9월 평양공동선언문'이 나왔다. 그 첫 행보로 북한 예술단이 10월에 서울에 온다는 것이다. '가을이 왔다'가 공연명이다. 지난 겨울, 봄을 재촉한 남북 대화가 여름을 거쳐 '결실의 계절'에 접어들었음을 인지하게 한다. ▼무릇 세상살이는 서리(霜) 맞지 않도록 가을걷이를 서둘러야 한다. 하지만 정세는 급물살을 타고 있어 성찰도 하게 한다. 하여 까까머리 학창 시절 교과서를 통해 달달 외운 '가을의 기도(김현승 시)'를 읊조린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 강릉을 거점으로 독립운동을 했던 서화가 차강(此江) 박기정 선생의 혼신이 담긴 작품(서예)이 '추수정신(秋水精神)'이다. '가을의 물처럼 차고 맑은 정신'을 겸비하시라는 가르침이다.

용호선논설위원·yonghs@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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