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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

[언중언]단풍 단상(斷想)

절기 상강(霜降)이 열흘 앞인데 벌써 서리가 내렸다. 온통 태워 버릴 듯 밤낮을 가리지 않고 휘몰아쳤던 지난 여름의 폭염도 아련한 추억이 됐다. 이러고 보면 '만물은 불(火)이다'라고 주장한 고대 그리스의 변증법적 사상가 헤라클레이토스의 확신에 찬 말을 흘려들을 수 없다. '만물은 흐른다'는 것이다. “이 세계에 고정불변한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다. 그렇기에 영원한 것은 없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이 사실만은 불변하다는 것이다. ▼속속 번진 단풍이 온통 가지각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매월당 김시습이 이즈음에 읊은 '붉은 나뭇잎(紅葉)'에 그런 정경이 생생하다. “가을은 노을을 잘라내어 옅은색 짙은색 붉은색 만들고/ 서슬 퍼런 서리는 웬 정이 많은지 끝도 없이 솜씨를 내비친다”는 구절이다. ▼생태학적으로는 이미 절정을 지나 쇠태기다. 하여 쓸쓸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원규 시 '단풍의 이유'를 음미하면 그렇지만도 않다. “이 가을에 한 번이라도/ 타오르지 못하는 것은 불행하다/ 내내 가슴이 시퍼런 이는 불행하다// 단풍잎들 일제히/ 입을 앙다문 채 사색이 되지만/ 불행하거나 불쌍하지 않다// (…)”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성찰하게 된다. 가을이 깊어지는 만큼 생각 또한 그래야 심신의 생리가 어울리기 때문이다. “오직 존재자만이 있을 뿐, 없는 것은 있을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변화', '생성'에 대비되는 엘리아학파(고대 그리스)의 창시자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에 대한 경의이자 신념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데카르트)'는 신념의 원천이자 뿌리다.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의 고언이다. “모든 잎이 꽃이 되는 가을은 두 번째 봄이다.”

용호선논설위원·yong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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