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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설]강원인 2만5천명 3·1운동, 통일로 완성해야 한다

철원·홍천 등 도내 곳곳에서 독립운동 물결

당시 도민 100명 중 2명꼴로 동참한 셈

남북, 상생 호혜 정신으로 분단 종지부 찍어야

100년 전 3·1만세운동은 일제강점기에 있던 한국인들이 일제의 지배에 항거해 1919년 3월1일 한일병합조약의 무효와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 만세운동을 시작한 사건이다. 3·1만세운동에 강원인들은 혁혁한 공을 세웠다. 국사편찬위원회에 따르면 도내 3·1운동은 1919년 2월28일부터 4월25일까지 순차적으로 진행, 참여 인원만 2만5,429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강원도 인원이 117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도민 100명 중 2명꼴로 3·1운동에 동참한 셈이다.

철원(3월10·11·12·18일, 4월8일)은 3월10일 학생 운동으로 1회, 일반 군중이 1회, 총 4회의 운동에 연인원 4,000명이 동원됐다. 화천(3월23·28일)은 3월 초 독립선언서 배포 외에 5개 장소에서 두드러지게 벌어졌고 참가한 연인원은 3,500명가량이었다. 홍천(4월1·2·3일, 4월11일(봉화시위))지역은 4월1일에는 홍천읍에서 다섯 차례 시위가 있었고 연인원 2,000여명이 동원됐다.

2일에는 동면에서 800명이, 3일은 동면 800명, 물걸리에서 1,000명이 운동에 나섰다. 4월11일까지 약 5,000명의 군중이 운동을 전개했는데 10명의 피살자, 2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도내 전역이 독립운동으로 물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총에 맞아 숨지거나 다친 도민은 사망 33~35명, 부상 62명에 달했다. 당시 강원도는 서울과의 접근성 등 제약 때문에 3·1운동이 상대적으로 늦고 순차적으로 일어났지만 조선독립에 대한 열망만큼은 어느 곳보다 뜨거웠다. 강원인들의 3·1만세운동은 이제 한반도 통일을 완성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우선은 지금 내부 파쟁과 갈등을 넘어 연대와 통합을 적극적으로 이뤄내야 한다.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항일'과 '독립운동'의 좁은 의식세계로부터 벗어나 우리의 정신세계와 미래 공간을 활짝 열어 나가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의 뿌리는 항일보다 깊고 줄기는 독립보다 크다. 자기혁신에 바탕해 대통합, 민주공화, 세계시민, 보편 평화로 나아간 3·1정신의 큰 바다로 나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3·1만세운동 100돌을 맞았지만 선열들 앞에 우리는 한없이 부끄럽다. 일제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4대 강국은 한반도에서의 주도권 확보를 위해 대치 중이다. 남북은 분단됐고, 70년이 지나도록 소모적인 긴장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전 세계가 냉전을 끝냈지만 지금까지 한반도는 냉전의 마지막 현장으로 남아 있다. 남북이 상생과 호혜의 정신으로 분단사에 종지부를 찍기를 염원하지만 현실은 요원하다. 일본은 과거사 반성은커녕 가해국으로서 책임을 외면하고 갈등만 키우고 있다. 3·1절을 앞두고 우리의 대한민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냉철히 짚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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