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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

[언중언]책에 대한 예의

한글 산실이 세종대의 '집현전'이었듯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정조 재위 시의 학문의 전당은 '규장각'이다. 외연은 왕립도서관이었으나 정조의 속내는 새로운 인재들을 길러내는 것이었다. 집권세력이었던 노론의 전횡에서 벗어나는 것이 과제였기 때문이다. 주목하게 되는 것은 규장각 사검서관(四檢書官), 이덕무·유득공·박제가·서이수다. 모두가 서얼 출신, 이들이 조선 후기 실학사상의 움을 틔웠으니 기특하다. ▼검서관은 문서·책의 분별, 관리·보관에 관한 식견을 두루 갖추는 등 남다른 혜안이 필요했기에 임명 절차도 단순하지 않았다. 자질을 고려해 전임자 2명이 추천하고 규장각의 각신(閣臣)이 다시 3명의 후보자를 갖춰 상신하면 임금이 최종 낙점했다. 책이 무엇보다 귀중한 '지식의 보고'였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존귀하게 다뤄졌음은 물론이다. ▼지식습득 방식이 다양하고 편리해짐에 따라 책에 대한 대접 또한 소홀한 게 사실이다. 상허 이태준 선생이 '책보다는 冊(책)으로 쓰고 싶다'고 했을 정도로 산고를 통해 발간됨에도 천덕꾸러기로 여겨지기 일쑤다. 독서의 중요성, 필요성을 언급하는 것이 되레 고리타분하다. ▼어제(23일)가 '세계 책의 날'이었다. 책을 지니는 것은 '필히 읽겠다'는 다짐이다.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독서업무를 취급하는가 하면 밥벌이 수단으로 책을 언급하는 꼴불견 처사를 거듭 사유했다. 분서갱유(焚書坑儒) 못지않은 박대·외면, 장식물 취급이다. 주워듣는 요령이 아닌 사유해서 스스로 판단·창안하는 능력이 책 읽기에 달렸다. “읽어야 할 책들은 어떤 전자 장치로도 대체될 수 없다. 그것들은 손으로 잡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움베르토 에코가 '참조할 책들과 읽어야 할 책들' 제하에 적은 충고다. 손의 기능이 바로 책 펼쳐 들기다.

용호선논설위원·yong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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