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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

[언중언]`비평을 위한 변명'

“요즘은 무슨 책을 읽냐?” 오대산에서 내려온 스님은 맞절로 맞아주시며 그렇게 물었다. “이것저것 눈 충동에 걸린 것을 꺼내 읽습니다.” 현대철학에 남다른 식견을 지닌 스님은 자신의 떠돎을 질 들뢰즈의 노마드(Nomad)론에 빗댔다. 이야기는 노마디즘 해설서인 '천개의 고원'으로 흘러내렸다. 그러곤 필자를 불러 앉힌 의중을 끄집어냈다. “그냥 지켜보지 왜 사리분별을 해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느냐.” “그렇군요. 한데 왜 불편해할까요? 켕기는 게 있어서가 아니겠습니까?” 공무원인 후배가 심중을 단숨에 꺼냈다. “스님. 저는 이(필자) 선배가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실은 지난 주말 출판기념회에서 건네받은 책을 단숨에 읽고 숨을 돌리고 있던 차였다. 음악교육자,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영진 선생의 '비평을 위한 변명(디자인하우스 간)'이다. 그날 저자가 당부한 말 또한 절절했다. 표제로 쓴 명칭, 그 제하의 글편과 그에 이어 나오는 '춘천 양악(洋樂) 변천 소사(小史)-30년'만큼은 꼭 읽어 달라는 것이었다. ▼“비평은 창조의 정수(精髓)다.” 저자는 '비평을 위한 변명' 서두에 미국 영화감독·배우 오슨 웰스(Orson Welles)의 어록에 나오는 문구를 제시했다. 그 이유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칸트, 헤겔, 아도르노, 하이데거, 그리고 비어즐리에 이르기까지 예술철학의 명저를 저술한 수많은 미학자의 예술비판(비평) 개념과 당위성에 기반한 논거다. 비평의 사회적 기능과 중요성, 국내외 음악계의 현상과 지향하는 추세를 주시했음은 물론이다.

▼'(…) 변천 소사-30년'은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춘천지역 음악의 역사, 그 맥락과 가치를 분석적으로 고찰해 놨기 때문이다. 날 선 문장에 걸린 이름(실명)은 그 인생을 누추하게 하거니와 비록 명성을 크게 얻지는 못했어도 지역 음악예술 발전의 밑거름이었음을 치밀하게 살폈으니 말이다. “늘 두렵다.” 권두 서문 첫 문장이다. “자다가 가위 눌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실토한 비평가의 고뇌가 숙연하게 한다.

용호선논설위원·yong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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