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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

[언중언]`메달의 심리학'

1936년 베를린올림픽 때였다. 마라톤 우승 후보는 원래 아르헨티나의 후안 카를로스 자발라였다. 올림픽 2연패를 노리던 그는 무섭게 치고 나갔다. 우리의 손기정 선수가 바짝 뒤쫓았다. 자발라는 점점 더 속도를 냈다. 그때 2위 그룹에서 함께 뛰던 영국 선수 어니스트 하퍼가 금쪽같은 충고를 던졌다. “그는 곧 지칠 겁니다. 천천히, 꾸준히 뛰세요.” 그 말에 손 선수는 자신의 평소 속도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무리한 자발라는 28㎞ 지점에서 추월당한 뒤 기권하고 말았다. 금메달은 결국 손 선수 차지가 됐다(신예리, 2등의 역설, 2010). ▼1등은 지키기 힘든 만큼 주는 보상도 크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올림픽에 나가 2등을 하면 은메달은 딴다. 그러나 정치에서 2등을 하면 잊힌다”며 정계의 냉혹함을 지적했었다. ▼하지만 올림픽의 2등도 선거에서 지는 것 못지않게 괴로울 수 있다. 차라리 동메달 선수가 은메달 선수보다 더 행복하다는 '메달의 심리학'이 나왔을 정도다. 토머스 길로비치(미국 코넬대) 교수팀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때 은·동메달 수상자들의 시상식 표정 등을 분석해 발표한 이론이다. 동메달의 경우'노 메달'을 벗어난 것 자체에 만족하지만 은메달을 딴 선수들은 금메달을 놓친 분함을 떨치지 못하더란 거다. “세계에서 단 한 명만 빼고 모두 이겼음에도 죽도록 괴로워하는 2등의 역설”(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이다.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20세 이하(U-20) 한국 축구 대표팀이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냈다. 더욱이 대회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볼은 대한민국의 이강인이 차지했다. 대표팀은 오늘(1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다. 영원한 1등도, 2등도 없으니 또 한 번 미래의 도약을 준비하기 바란다. 지금 우리에겐 자신과 싸우면서도 즐기며 축구를 한 당신들 모두가 1등이요, 금메달감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란 사실이 이렇게 가슴 벅찬 자랑스러운 일인 줄 이제 알았다는 사람도 많다.

권혁순논설실장·hsgw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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