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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미투'에 욕할 자격

'나도 당했다'는 미투(#MeToo)운동은 미국 영화계에서 처음 터졌다. 2018년 우리나라에서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법조계와 문단, 연예계를 넘어 문화예술계 전반, 종교계, 각급 학교, 체육계, 정계 등 사회 각계로 옮겨붙어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안희정 충남지사가 물러나고 탤런트 조민기씨는 목숨을 끊었다. 여성에 대한 인식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그동안 권력과 억압기제에 의해 자행돼 온 온갖 음란과 부패행위는 폐쇄된 조직의 하위문화 울타리 안에서 묵인 내지 관용으로 얼버무려져 왔던 게 사실이다. 이제 오래 묵은 침묵의 카르텔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문단과 연예계 유명 인사들의 상상을 초월한 비정상적인 성 유희들이 폭로됐다. 예술과 학문, 종교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일가를 이룬 유명 인사들일수록 권세를 남용해 밀실에서 입에 담기에도 민망한 '괴물놀이'의 민낯이 드러나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수행비서 김지은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유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2부는 지난 9일 피감독자 간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의 상고심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권후보 경선에까지 나섰던 안 전 지사의 정치적 생명은 사실상 끝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안 전 지사가 위력(威力)으로 김씨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을 '권력형 성범죄'로 인정했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은 헌법이 보장한 보편적 인권을 짓밟는 범죄다. ▼이번 판결이 법리에 그치지 않고 성평등한 직장과 사회로 나아가는 계기가 돼야 한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없는 세상을 향한 미투는 더 치열하게 계속돼야 한다. 동시에 내 마음과 일상 속에서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부끄러운 전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외치는 미투도 필요하다. 당신은 할 수 있는가. 이런 결단을 할 수 없다면 미투 연루자들을 욕할 자격이 없다.

권혁순논설실장·hsgweon@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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