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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

[언중언]'전·월세'

우리의 셋방 문화에는 서민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내 집 마련으로 가는 중간 기착지에서 겪어야 했던 아픈 추억이 묻어 있다. 지금은 자취를 감추고 있지만 예전에는 셋방 가운데 월세가 아닌 사글세가 있었다. 삭월세(朔月貰)가 변한 말이다. 열 달치 월세를 한꺼번에 먼저 낸 다음, 달이 꽉 차 그걸 다 까먹고 나면 방을 비워주거나 돈을 다시 내 연장해야 했다. 보증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이들에겐 이것도 감지덕지였다. ▼하지만 사글셋방살이는 설움도 많이 겪었다. 물을 헤프게 쓴다, 전기를 많이 사용한다,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린다, 아이들이 너무 시끄럽다, 손님이 뻔질나게 찾아온다…. 주인의 눈치와 잔소리는 끝이 없었다. 집주인의 그림자만 어른거려도 세입자는 가슴이 덜컥할 정도였다. 오죽하면 '밥은 굶어도 내 집 없이는 하루도 못 산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살았을까. ▼전세는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임대차 형태다. 기원은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산, 인천, 원산 등 3개 항구 개항과 일본인 거류지 조성, 농촌인구의 이동 등으로 서울의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전세는 고성장기 집값 상승세와 고금리를 배경으로 뿌리를 내렸다. 가진 돈에 전세를 끼어 아파트를 장만하면 집값이 오르면서 자산을 늘려 줬다. 세입자 쪽에선 은행 금리보다 싸게 거주권을 얻는 한편으로, 고스란히 유지한 목돈이 다음 단계로 가는 사다리가 됐다. ▼최근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 이른바 '임대차 3법'이라고 불리는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을 놓고 여야 의원 간 전·월세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일부 발언은 엉뚱하게도 대못이 돼 집 없는 서민들의 가슴에 박히고 있다. 주거정책을 놓고 얄팍한 지식을 자랑하고 싶은 건지, 정쟁을 하자고 시비를 거는 건지 모를 정도다. 섣부른 꼬투리 잡기나 말장난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지금은 서민들이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도록 애써야 할 때다.

박종홍논설위원·pjh@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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