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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

[언중언]장마에 대한 생각

비만큼 사람과 가까운 자연현상도 없다. 사랑할 때 그리고 이별할 때 비처럼 절절히 다가오는 게 있을까. 당연히 비는 가요와 문학의 단골 소재다. 김광석의 '사랑했지만'도 비에 관한 노래인데, 접근법이 독특하다.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어/ 자욱하게 내려앉은 먼지 사이로/ 귓가에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그대 음성 빗속으로 사라져 버려…”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도 비는 중요한 설정이다. 소설 마지막은 “나는 병원을 떠나 빗속을 걸어 호텔로 돌아왔다”로 끝난다. 이 간결한 문체의 대가는 사랑하는 여인이 아기를 낳다 숨지는 비극적 장면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비는 비극, 허무, 죽음을 상징하지만 작가는 수십 번 고쳐 쓴 끝에 감정표현이 절제된 이 문장을 완성했다고 한다. ▼수도권과 중부지방에 수일째 이어진 집중호우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난 4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집계(오후 7시30분 기준)에 따르면 지난 1일 이후 집중호우로 모두 15명이 숨지고 11명이 실종됐다. 기상청은 집중호우가 길게는 오는 13일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대로라면 올해 장마기간은 50일에 육박하면서 1973년 이후 역대 두 번째로 긴 장마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기예보에서 '내일은 비'란 말을 듣는 게 일상이 돼 버린 셈이다. 거기에다 물폭탄 같은 국지성 호우가 잦아 영서엔 비가 오고 다른 곳은 맑기도 했다. 모두 기후변화의 한 양태다. 기상이변에 따른 '극값' 경신 빈도도 높아졌다. 지난달 31일 오후 6시부터 5일 오전 5시30분 현재까지 내린 누적 강수량은 철원 장흥 619㎜, 철원 양지 492.5㎜, 춘천 남이섬 442㎜, 북춘천 446.5㎜, 화천 상서 422.5㎜, 영월 336.6㎜, 홍천 화촌 302㎜ 등이다. ▼올 장마는 유난히 길다고 하니 장마에 대한 생각을 바꾸면 어떨까. 비 한번 시원하게 내린다, 세상의 오물들을 일거에 쓸어버린다고. 그러기엔 이번 장마가 할퀴는 상처가 너무 크다.

권혁순논설주간·hsgweon@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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