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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

[언중언]`만우절(萬愚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활기 없는 뿌리를 일깨운다.' 미국 출신의 영국 시인 T.S. 엘리엇이 1922년 발표한 시 '황무지'의 일부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황폐화한 유럽의 정신적 공황 상태 속에 자연은 생명의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4월이야말로 잔인하다는 역설적 의미다. 이 때문일까. 일상을 잃어버린 올해는 잔인한 4월이라는 말이 유난히 가슴에 와닿는다. ▼오늘(1일)은 만우절이다. 만우절은 16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됐다는 게 유력한 설이다. 당시엔 율리우스력에 따라 3월25일에 새해가 시작됐고 새해 축제 마지막 날인 4월1일 선물을 교환하는 풍습이 있었다. 프랑스 왕 샤를 9세가 1564년 그레고리력을 받아들여 지금의 1월1일을 새해 첫날로 변경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사람들은 새해 축제를 열었고, 사실을 아는 사람들도 새해 축제를 흉내내고 성의 없는 선물을 보내는 장난을 쳤다. 이것이 유럽 전역에 퍼졌다는 것이다. ▼'절간의 만우절'은 순수한 동심을 따뜻하게 그린 단편영화다. 만우절 밤 산속의 가난한 작은 암자에서는 마법이 펼쳐진다. 먹고 싶던 소시지와 통닭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다. 열 명 남짓한 동자승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부처님 선물에 마냥 기뻐하며 환호한다. 하지만 그 선물은 스님이 특별한 방법으로 구해 온 것이다. 배고픈 동자승들을 위해 금불상의 엉덩이를 떼어 내 소시지와 통닭을 사 준 것이다. 스님은 밤새 3,000배로 부처님께 용서를 구한다. ▼2007~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닥쳐 모두가 힘들고 어려웠을 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특별보너스 나왔다'는 얘기란 설문조사가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 궁금하다. 어쩌면 '코로나19가 종식됐다'나 '일상이 다시 시작됐다'는 말이 아닐까. 웃을 일이 많지 않았던 지난 1년이다. 올해 만우절에는 모두가 한바탕 웃고 그 마법이 꼭 실현돼 지친 심신에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박종홍논설위원·pjh@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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