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일보 모바일 구독자 240만
언중언

[언중언]‘스포츠의 힘'

1977년 11월26일. 홍수환은 파나마에서 엑토르 카라스키야와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페더급 초대 타이틀을 걸고 링에 올랐다. 홍수환은 적지에서 ‘11전 11승 11KO'를 기록 중이던 강적 카라스키야를 만나 2라운드에만 4차례 다운당하며 고전했다. TV를 보며 응원하던 국민들이 패배를 예감할 때였다. 하지만 그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투지로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3라운드에 몸통 공격으로 카라스키야를 조금씩 무너뜨렸고 왼손 훅으로 기적 같은 KO승을 따냈다. 이후 ‘4전5기'는 불굴의 투혼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IMF 외환위기로 나라 앞날이 풍전등화 같던 1998년 7월, 박세리 선수의 US여자오픈 우승은 온 국민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넣었다. 연못에 들어가기 위해 양말을 벗었을 때 드러난 그녀의 까맣게 탄 종아리와 대비되는 하얀 발은 가망 없다 절망했던 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 줬다. 야구의 박찬호도 마찬가지다.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보내오는 승전보는 국민들에게 큰 힘이 됐다. ▼스포츠는 국민 대통합도 이뤄냈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달성할 때 사람들은 너나없이 거리로 뛰쳐나와 얼싸안고 ‘대한민국'을 외쳤다. 서울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우며 ‘하나 된 대한민국'의 붉은 물결에 세계도 놀랐다. 이뿐 아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박태환이 수영에서 거둔 금메달과 김연아의 월드그랑프리 제패는 결코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새삼 일깨웠다. ▼도쿄올림픽에 참가한 우리 선수단의 잇단 승전보가 코로나19 등으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활기를 되찾을 수 있는 에너지가 되고 있다. 양궁 전사들은 우리가 세계 최고라는 자긍심을 갖게 했다. 펜싱 단체전의 에페 남자 대표팀과 사브르 여자 대표팀은 나란히 중국과 이탈리아를 상대로 대역전극을 일궈내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웃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보여줬다. 핸드볼과 배구에서 펼쳐진 한일전은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했다. 대한민국 스포츠의 힘이다.

박종홍논설위원·pjh@kwnews.co.kr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