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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일반

[핫 이사람]평생모은 영화자료 수천점 기증…시골마을에 첫 체험형 박물관

횡성 귀촌 영화인 김운석 아트영상 대표

◇횡성군에 정착한 아트영상 김운석(사진 왼쪽·67) 대표와 친구 신상기(67)씨. 신씨는 김 대표와 마찬가지로 과거 전국 팔도를 다니며 가설 극장을 운영했다. 김 대표와 신씨 옆 필름 영사기는 그가 소장한 가장 오래된 제품으로 1934년 미국에서 생산됐다. 지금은 사라진 대구 자유극장에서 사용하던 것이다.

“절찬 상영! 다들 영화 보러 오세요”. 쩌렁 울리는 나팔소리를 들은 마을 처녀·총각들이 해 질 녘 울렁이는 가슴을 안고 가설극장에 모여 든다. 두툼한 광목천을 빙그르 둘러 만든 작은 극장은 '달그락' 필름을 감는 영사기 소리가 그대로 들려온다. 영화 절정에 이르러 필름이 끊어지면 '아~' 하는 야유가 터져 나오고 필름을 이어 붙이는 찰나에 식은땀이 삐질 흐른다. 한평생을 영화와 함께한 아트영상 김운석(67) 대표의 입에서 그 시절의 낭만이 한 움큼 쏟아져 나왔다. 김 대표는 치열했던 영화 일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2016년 횡성군에 새로운 터전을 일궜다. 뜀박질을 멈출 만도 했지만 그는 횡성에서 돗자리영화제를 지원하고 지역 축제장에서 추억의 영화관을 운영하며 여전히 영화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치악산 자락 횡성 강림면에는 김 대표가 평생을 모은 영사기와 영화 관련 소장품을 모아 영화박물관 건립도 추진된다. 필름 영사기가 2000년대 디지털 영사기에 자리를 빼앗기고 다시 LED스크린이 영사기의 존재마저 흐릿하게 지워 가는 시대를 맞았지만 그의 열정은 여전히 뜨겁다.

17살때 마을에 온 극장 무리 따라 나서

평생 전국 유랑 가설극장서 영화 상영

영사기·필름·포스터등 희귀자료 보유

'안흥찐빵축제'서 영화관 운영 계기로

강림면 영화박물관 郡 제안 쾌히 수락

한편의 영화로 주민 위로 전하고싶어

■영화 인생을 소개해 달라=“고향이 경기 양주군(현 양주시) 남면 시골이었다. 당시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가설극장을 하는 무리가 많았는데 어느 날 마을에 이들이 찾아왔다. 영화가 신기하고 재미있어 무작정 극장 패거리를 따라나섰는데 그 때가 중학교를 갓 졸업한 17살이었다. 가설극장은 전국을 유랑한다. 단, 필름을 개인이 가질 수 없으니 하루씩 빌리는 구조다. 서울 종로 단성사(국내 최초 상설 영화관) 뒤편에 가면 영화사들이 모여 있었다. 새벽 첫차를 타고 서울을 오가며 필름을 바꿔 영화를 상영했다. 그때 전국 팔도의 영화인들을 만나 교류했다.”

■이런 형태의 영화가 전성기인 시절도 있었을 것 같다=“TV가 보편화되기 전인 1960~1970년대는 영화 한 편을 보여주고 가수들이 무대에 올라 공연까지 선보였다. 영화 관람이 예나 지금이나 가장 쉽게 찾을 수 있고 많이 사랑받는 오락 아니겠나. 그래서인지 가장 바빴던 시절이 IMF시절인 1997~1998년도였다. 시름 가득한 사람들이 큰돈 들이지 않고 영화 한 편에 잠시 현실을 내려놓는 것이다. 이 때 전국의 해수욕장과 관광지를 찾아다니면서 영화를 정신없이 상영했다.”

■지금은 주로 소규모 상영으로 진행되는데 시대가 변했기 때문인가=“아무래도 그렇게 봐야 하지 않을까. 한동안 가설극장이 활성화되고 영화산업의 규모가 점차 커지다 보니 대기업이 투자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개인 영화사가 많았는데 요즘은 수입과 배급, 제작까지 대기업이 독과점하는 구조다. 이렇게 되면서 기존 영화사들은 쇠퇴할 수밖에 없게 되고 결국 기존 자동차극장, 소규모 상영 분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영화 소장품이 많은데=“평생 가설극장을 운영하며 영사기 대여 일을 하다 보니 장비, 부품이 하나둘씩 쌓였다. 혼자 횡성 집으로 옮기는 데 1년이 걸렸다. 내 눈에는 보물이고 목숨과도 같은 물건이다. 가장 오래된 영사기는 대구 자유극장에서 가져왔고 1934년에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자유극장 대표와 절친한 사이였는데 '시간이 흘러 전시라도 해 보라'는 권유에 찾아가 받아 왔다.”

김 대표는 영사기는 4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영사기 1개당 무게가 수백㎏에 달해 별도의 보관 창고까지 갖췄다. 매일 영사기를 닦고 기름칠하며 관리해 수십 년 된 영사기들도 필름을 걸면 언제든 영화를 상영할 수 있다. 그는 영사기와 부속품 외에도 300여편의 영화 필름, 영화 포스터 6,000여장을 보관 중이다. 영화마다 딱 1부만 있는 심의용 대본도 여럿 갖고 있다.

■소장품 기부를 결심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횡성에 정착해 보니 집 근처 노구사당과 노구소 계곡을 찾는 관광객이 많더라. 이왕이면 소장품들을 전시해 볼까 싶어 처음에는 마을에 마땅한 자리가 있는지 알아봤다.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던 때 젊은 시절 영화를 함께한 안흥면의 친구의 소개로 횡성군과 연을 맺었다. 이후 안흥찐빵축제에서 추억의 영화관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강림면에 마땅한 관광 전시시설이 없으니 소장품들을 채워 넣어 영화박물관을 만들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고 추후 제대로 관리한다는 조건으로 이를 수락했다.”

횡성군은 옛 강림면복지회관 일대에 영화박물관 건립을 추진하며 타당성 용역 등 행정 절차를 밟고 있다. 김 대표가 보유한 영사기들이 대체로 구동이 가능한 만큼 박물관은 상영·체험형 복합 전시공간으로 꾸며질 계획이다.

■목표는 무엇인가=“강림면에 영화박물관이 들어서고 잘 관리해 관람객들이 많이 찾아오면 작은 영화제를 하고 싶다. 안흥면돗자리영화제와 태백시, 전북 전주 등에서 영화제를 열었던 기억이 좋게 남아 있다. 장소가 조금은 불편해도 얼마든지 영화제를 열 수 있다. 젊은 시절 영화 한 편으로 사람들에게 위로와 즐거움을 전해줬듯 소소하더라도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횡성=정윤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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