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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강원나무기행]600년전 율곡이 사랑했던 매화향 올봄에도 오죽헌 휘감는다

강릉 오죽헌 '율곡매·배롱나무'

◇강릉 오죽헌 뒤뜰에 매화나무가 꽃을 피워내고 있다. 율곡매라고 불리는 이 매화나무는 천연기념물 제484호로 지정돼 있으며 수령은 600년가량 됐다. ◇강릉 오죽헌 배롱나무 그림자가 오죽헌 앞 마당에 깊게 그려져 있다.(사진왼쪽부터)

아들서 사위로 이어온 오죽헌

조선전기 1400년대에 지어져

소유권 이전 차별없이 대물림

권처균 호 '오죽헌' 집 이름돼

600년 집안의 산 증인 율곡매

높이 7m 천연기념물 제484호

신사임당·이율곡 사랑 독차지

지금도 매년 꽃피고 매실 열려

100일 간 향기 뿜는 배롱나무

강릉 市花로서 오죽헌 수호수

여류 문인 허난설헌과 닮은꼴

향기 백일 지속돼 백일홍 애칭

전(殿), 각(閣), 헌(軒), 루(樓) ,정(停) ,재(齋), 장(莊) 등은 건물을 이르는 말이다.

조선의 건물은 크기와 용도에 따라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조선 초기 건축된 오죽헌(烏竹軒)은 우리나라 주택 건축물 중에서 비교적 오래된 건물에 속한다. 조선전기 주택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인정받아 1963년 보물 제165호로 지정됐다. 오죽헌은 대물림 내력을 알 수 있는 족보 있는 건물이다.

오죽헌을 지은 이는 세종 때 공조참판을 지낸 백경(伯卿) 최치운(崔致雲·1390~1440)이다. 강릉최씨 최필달 공의 후손으로 태종 때 문과에 급제한 후 공조, 예조, 이조 참판을 거쳐 문종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우빈객(右賓客)을 역임한 강릉 12현의 한 분이다. 그는 이 집을 차남 최응현(1428~1507)에게 물려줬고, 최응현은 그의 사위인 이사온에게, 이사온(신사임당의 외할아버지)은 사위인 평산 신명화(사임당의 부친)에게, 신명화는 그의 넷째 사위인 안동 권화에게, 권화는 아들 권처균에게 물려줬다. 오죽헌의 소유권이 조선시대 재산이 아들과 사위를 차별하지 않고 넘나들었음을 보여준다. 권처균은 집 주위에 검은 대나무가 무성한 것을 보고 자신의 호를 오죽헌이라 칭했는데 그것이 집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1975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성역화 사업으로 국가에 헌납하기 전까지 안동권씨 강릉파 증손 권용만(전 강릉사범대 교수)의 소유였다.

율곡매라고 불리는 매화나무는 천연기념물 제484호로 지정된 나무로 600년가량 됐다. 나무는 건물 왼쪽에 서 있다. 오죽헌이 들어설 당시인 1400년경에 심은 것으로 보이며 신사임당(1504~1551), 이율곡(1536~1584)과 관련이 있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사군자라 불리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는 조선 사대부들이 좋아하는 그림의 소재였다. 신사임당은 그 중 매화를 사랑했다. 초충도로 신사임당을 떠올리지만 고매도, 묵매도 등 매화와 관련된 그림도 다수 남겼으며, 맏딸의 이름도 매창으로 지을 만큼 사임당의 매화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특히 율곡이 10세 이전까지 쓰던 벼루에는 움트는 매화가지가 새겨져 있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듯이 부지런히 자신의 학문을 갈고닦으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조선의 선비들은 유독 매화를 사랑했다. 집 안에 화분에 분재로 심어 즐기기가 유행할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매화는 세상이 추위로 떨고 있을 때 홀로 꽃을 피워내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굴하지 않은 선비정신을 보여주는 표상이었다. 율곡매는 높이는 약 7m, 수관 폭은 동서 방향으로 8m, 직경은 약 68m, 나무 둘레는 1.9m다. 연분홍 꽃이 피는 홍매로 3월20일 전후로 개화한다. 중국이 원산지인 매화는 관상용 또는 과수로 심는다. 열매는 매실 또는 오매라고 부른다. 오래된 고목에서 피어난 꽃은 더욱 애상이 든다. 600년을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바람과 햇살, 비, 눈, 그리고 사람을 만났을까? 해마다 잔설이 남아 있는 이른 봄, 매화는 지금도 세상을 향해 그윽한 향기를 품어낸다. 이율곡의 문기가 매화를 닮은 것은 아닐까?

배롱나무는 달빛이 닳도록 반질반질하게 빗질한 오죽헌 앞마당에 짙은 그림자를 남기는 나무다. 이 나무 꽃은 향기가 백일동안 주변으로 번져 백일홍이라고도 부른다. 자신의 향기를 오래도록 남기는 나무는 선비들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선비들은 사가에 배롱나무를 심어 학풍이 오래가기를 기원했다. 여성으로 학문의 정점을 이룬 허난설헌은 강릉 초당이 고향이다. 학문의 전당인 오죽헌 배롱나무는 난설헌을 떠올리게 한다.

조선시대 남성위주의 사회는 여성에게 학문을 허락하지 않았고, 권력에서 여성을 철저히 배제했다. 천재 여성 허난설헌(1563~1589)은 짙은 나무 그림자만큼이나 기구한 사연을 남겼다. 허난설헌의 빼어난 한시 실력은 중국에서 알아볼 정도였다고 한다.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남편은 자신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아내를 달가워하지 않았는지, 난설헌의 시에는 혼자서 긴긴밤을 지새우며 남편을 기다리는 시가 적지 않다. 난설헌은 친정아버지와 오라버니의 귀양과 죽음, 그리고 자식의 잇따른 변고 때문인지 요절했다. 배롱나무는 난설헌의 못다 이룬 꿈을 보여주듯 100일간 꽃을 피워 향기를 바람에 보낸다. 배롱나무는 사대부 집안에서 심는 나무로 학문과 정신세계가 오래도록 개화되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600년가량 된 배롱나무는 강릉의 시화로 지정돼 있으며 율곡매와 함께 오죽헌을 지키는 나무다.

최근 강릉시는 화폐의 도시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이율곡과 신사임당이 각각 1,000원권과 5만원권 화폐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5,000원권 화폐에 그려진 오죽헌에는 나무가 없다. 건물만 덩그러니 그려져 있다. 복원된 오죽헌은 건축 당시부터 함께한 나무가 있어 가치가 빛난다.

글·사진=김남덕사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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