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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조선시대 핫 플레이스, 강원의 명소는 지금]신선 노닐던 쪽빛 호수 갈 곳 잃은 갈대만 무성

(1) 고성 선유담

◇바위에 새겨진 '선유담' 글씨. ◇가학정 자리르 살펴보는 시민들. ◇고성 선유담. ◇권혁진 강원한문고전연구소장(사진위쪽부터)

산으로 둘러싸인 담청색 연못

지금은 빠르게 육지화 진행돼

옛 선인들 글·그림 잇따라 남겨

정자 '가학정' 지금은 터만 남아

시대에 따라 사람들이 찾는 장소는 변하기 마련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떤 장소를 즐겨 찾았을까?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던 조선의 선비들은 자연의 공간을 학문 연장으로 생각했다. 아름다운 강원의 자연 속에는 옛 선조들이 남긴 글과 그림이 남아 있다. 문향을 품어내는 자연은 지금도 관광지로 탈바꿈해 사람들을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옛 사람들의 발자취는 남아 있지만 개발로 사라지거나 잊혀지고 있다. 강원일보는 '조선시대 핫 플레이스, 강원의 명소는 지금'을 통해 현대인들의 기억에서 지워진 18개 시·군의 명소를 찾아 새롭게 조명하는 기획을 시작한다.

신선은 오지 않는다. 조선시대 고성의 핫 플레이스 선유담은 고성군 죽왕면 공현진리에 있다. 선유담의 미학을 알려주는 것은 이의숙(李義肅·1733~1807년)의 '선유담'이다. 거의 산으로 둘러싸인 선유담은 낮은 담장 같은 모래 언덕을 경계로 바다와 나뉘어 있다. 언덕 너머로 담청색을 칠한 것 같이 보이는 것은 바다다. 호수 가운데로 향해 뻗은 산자락에 우뚝한 정자도 보인다. '그윽하고 한가하며 얌전하고 고운 것이 규방의 처자 같고, 밖으론 어둡고 안으로 밝은 것이 덕을 숨긴 어진 선비 같다.' 규모가 크지 않아 위압적이지 않고 화려하게 자랑하지 않는다. 짙게 화장한 여인이 아닌 수수한 처자이며, 자신의 능력을 떠벌리는 권력자가 아닌 은둔하고 있는 선비와 같다.

하나 더 추가한다면 '신령함'이다. 신익성(申翊聖)은 '금강산유람소기'에서 “선유담은 원래부터 신령스러운 곳이다. 내가 피곤하여 소나무 뿌리에 기대어 잤는데, 꿈에서 옛날 의관을 입은 사람과 함께 도가와 불가의 일을 실컷 이야기했다.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그 말이 여전히 기억나니 기이한 일이다.”라고 기록했다. 정자에서 게으른 낮잠을 잔다면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신령스러운 공간이 된다.

아름다운 선유담에 한시가 없을 수 없다. 일찍이 안축(安軸·1287~1348년)은 '관동별곡'에서 “선유담, 영랑호, 신비하게 맑은 골짜기 속/ 녹색 연잎 덮인 섬, 푸른 구슬 두른 산, 십 리의 바람과 이내/ 향기 은은하고 푸른빛 짙은데 유리 같은 수면에/ 아, 배 띄운 광경 어떠한가!”라고 흥취를 맘껏 발산했다. 최립(1539~1612년)의 시는 연못 옆 정자에 걸려 있었다. 여러 시인의 문집에 오르내리며, 정자에 오른 자들은 반드시 그의 시에 화답하여 시를 지을 정도였다.

시뿐만 아니라 인문지리지도 선유담을 기록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봄에는 철쭉꽃이 바위를 끼고 많이 피며 순채가 못에 가득하다고 알려주고, '연려실기술'은 작은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는데 반은 호수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있다고 묘사한다. '관동지'는 영랑의 무리가 이곳에서 놀아서 선유담이란 이름이 생겼으며, 예전에 정자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고 알려준다. 이식(李植)이 읍지를 지은 뒤에, 어떤 군수가 연못가에 관청에서 운영하는 정자를 짓고 이름을 가학정(駕鶴亭)이라 했다. 그 뒤 정자가 무너져 김광우가 옛 터에서 물가로 조금 내려가서 1칸의 정자를 옮겨 짓고 유한정(幽閒亭)으로 이름을 고쳤다.

가학정은 그림으로 전해져서 선유담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1788년 김홍도(金弘道·1745~?)는 정조(正祖)의 명을 받고 관동지역 일대와 금강산 등을 유람하며 명승을 그린 '금강사군첩(金剛四郡帖)'을 남겼다. 그중 한 작품이 선유담 옆에 있는 정자를 그린 '가학정'이다. 그림 오른쪽 위는 가진항이고 소나무 무성한 모래 언덕은 국도가 됐다. 그림 좌측의 산은 바위 가득한 모습으로 변함이 없으며, 정자가 들어선 산부리에 '선유담(仙遊潭)'이란 글씨가 바위에 남아 있다. 정자의 주춧돌과 기와 파편도 보인다.

공현진리 송지호모텔 옆길을 따라 걸었다. 신선이 노닐 만한 공간을 찾았다. 작아진 습지에 무성한 갈대만이 보일 뿐이다. 선유담은 육지화가 빠르게 진행돼 거의 사라진 상태가 됐다. 선인들의 글과 그림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선유담과 가학정은 이제 볼 수 없다. 신선이 유람하고 싶어도 유람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권혁진 강원한문고전연구소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권혁진 강원한문고전연구소장

권혁진 강원한문고전연구소장은 문학박사로 고전을 바탕으로 지역에 인문학을 입힌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18년 제2회 한국지역출판대상 천인독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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