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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평창동계올림픽이 찬사 속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고, 이어 열리고 있는 동계패럴림픽 역시 순항 중이다. 한국에서 30년 만에 열린 세계인의 스포츠축제가 `성공 올림픽'으로 치러진 데는 유치 과정부터 준비, 운영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진두지휘한 개최도시 단체장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다. 주개최도시 평창군의 수장인 심재국 평창군수에게 2018평창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에 대한 감회를 들어봤다.

역대 최대·최고 대회 평가
세계인에게 인정받은 축제
온 국민이 함께 만든 기적

2003년부터 평창 유치 동참
군수 취임후 예산확보 사활
중앙부처·국회로 매주 상경

계획에 없던 올림픽플라자
관람객 위한 시설 부족 판단
수만명 찾는 관광지로 조성

패럴림픽 무장애시스템 도입
식당·숙소·시설 편의성 호평
고생한 군공무원들에 감사


-동계올림픽에 이어 패럴림픽도 순항중입니다.

“큰 보람도 있고, 준비가 덜 된 부분에 대한 아쉬움도 있습니다. 올림픽이 끝나면서 20년에 걸친 평창군민들의 노력이 세계인들에게 인정받고, 역대 최대·최고의 대회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군민들이 자랑스럽고 보람도 느낍니다.”

뒤돌아보면 그는 군의원 시절부터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주민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유치전에 나섰고, 2003년 평창의 뜻을 알리기 위해 머리를 삭발하고 투쟁에 나선 적도 있었다.

하지만 유치에 성공하고 2014년 그가 군수에 당선됐을 때는 올림픽 준비에 단 3년밖에 시간이 없었고, 예산은 한 푼도 없었다.

“`평창의 생사는 올림픽에 달렸다'고 여겨왔는데 올림픽을 준비할 돈이 한 푼도 없었습니다. 적어도 평창군수라면 어디 가서 무슨 수를 쓰든 예산을 가져와야만 했고, 그래야 평창이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취임 한 달째부터 중앙부처로 매주 출근하다시피 했던 이유입니다.”

중앙부처에서도 역경은 계속됐다. 정부에서 어느 정도 평창에 대한 `그림'이 있을 줄 알았지만, 정부는 개·폐회식장과 경기장, SOC 사업만 신경 썼다.

평창과는 상관없이 경기만 치르면 된다는 인식에 예산 따기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다.

“처음 기획재정부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올림픽 개최지 경관 개선사업에 대한 예산을 퇴짜 맞았을 때 돌아오는 그 길이 깜깜한 터널 속을 지나는 것처럼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그럼 예산은 어떻게 확보했나요.

“방법을 바꿀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앙정부는 정부대로 1년에 40회 이상 쫓아 올라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무조건 국회를 들러 여당 야당을 가리지 않고 매달렸습니다. 다선 의원과 예결위원들에게는 수십 차례씩 찾아갔을 겁니다.”

군수라는 체면도 벗어던졌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평창동계올림픽 현황 보고를 받기 위해 대관령을 방문한 후 월정사로 이동할 때다.

당시 이희범 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이 같은 차로 이동하며 나머지 현안을 보고하기로 했지만, 심재국 군수가 새치기(?)를 했다.

“무작정 차에 올랐죠. 이희범 위원장에게는 `죄송하다. 의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만 짧게 양해를 구하고 다짜고짜 정 의장 옆자리에 올라탔습니다. 월정사까지 15분 동안 이동하면서 정말 많은 얘기를 했고, 평창올림픽 지원을 든든하게 약속받았습니다. 그땐 체면도 뭐도 없었죠.”

예산 미반영, 삭감 등을 거듭하던 국회와 정부가 결국 조금씩 예산을 배정하기 시작했다.

경기장 이동구간에 대한 첫 경관개선사업비로 232억원이 반영됐을 때는 담당과장을 붙들고 펑펑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전선 지중화, 노후 주택 정비, 야간 경관 조명 설치를 추진하면서 조금씩 개최도시의 면모가 바뀌기 시작했다.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었나요.

“당연히 올림픽플라자입니다. 올림픽특구 계획 당시 올림픽플라자는 없었죠. 동계올림픽 특성상 메달플라자가 있어야 하고, 관람객들이 즐길 시설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마땅한 부지가 없고 예산도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재부나 문체부나 모두 난색을 표했습니다.”

심 군수는 고민 끝에 `대관령중학교를 이전시키고 그 자리에 올림픽플라자를 짓자'는 계획을 세웠다.

기재부와 문체부, 교육부를 오가며 협의를 했지만 또 예산 문제로 퇴짜를 맞았다.

올림픽플라자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큰 가치를 지녔기에 그는 최문순 지사를 졸라 결국 학교 이전에 필요한 부지 확보비용의 50%를 약속받았다.

도비 45억원, 군비 45억원을 들여 이전 부지를 확보하고, 진입도로와 주변 환경 정비에 군비 50억원을 또 투자해 대관령중학교를 이전시켰다.

학교는 현대화 시설을 갖추게 됐고, 평창은 올림픽플라자라는 걸출한 올림픽유산을 남기게 됐다.

동계올림픽 기간 매일 1만5,000명에서 주말 3만여 명이 다녀가며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대관령면을 북적이게 만든 기반시설이 된 것이다.

“목숨을 걸겠다는 의지가 없었다면 올림픽플라자는 없었을 것입니다. 올림픽플라자에 관광객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서고, 지역 상가마다 자리가 없을 정도인 것을 눈으로 확인하니 뭉클했습니다. 나 스스로에게 `조금은 잘했다'라고 딱 한 번 칭찬했습니다.”

-올림픽기를 이양할 때 기분이 어땠나요.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그냥 허탈했고, 멍했고, 뭔가 가슴 한 구석에서 쑤~욱 빠져나간 느낌인데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기를 이양하고 자리로 돌아오고 나서야 `아~ 올림픽이 이제 끝난 거구나' 하는 느낌에 허전함이 밀려오더군요.”

-패럴림픽이 한창 진행중인데 남은 일정에 대한 각오는요?

“올림픽은 국력, 패럴림픽은 국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올림픽 성공으로 국력을 보여줬으니 이제는 패럴림픽에 집중해 국격을 높이겠다는 각오입니다. 장애인들을 위한 무장애 시스템을 도입해 최대한 편리하게 식당과 숙소, 시설을 이용하도록 하고 있지만 더 노력하겠습니다.”

심재국 평창군수는 누구의 평가보다도 장애인, 그리고 함께했던 가족들이 `패럴림픽이 올림픽보다 좋았다'고 말하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한다.

-군민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동계올림픽이나 패럴림픽 모두 평창군민과 강원도민의 성원과 자원봉사,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또 일반 행정업무는 물론 올림픽업무까지 하느라 퇴근도 없이 일하며 피로도가 많이 쌓였을 공무원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패럴림픽이 마무리되면 특별휴가로 보답하겠습니다.”

심재국 평창군수는 오늘도 대관령면 숙박업소에서 내일의 일정을 검토하며 밤을 지새우고 있다.

평창동계패럴림픽취재단=김영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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