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마약 청정국’이라 불리던 한국의 이름이 이제는 낡은 간판처럼 빛이 바랬다. 강원특별자치도의 통계가 그 사실을 말해준다. 스무 해 전 200여명에 불과하던 마약사범이 지난해엔 600명을 넘어섰다. 숫자는 냉정하지만, 그 안엔 더 차가운 현실이 숨어 있다. ‘남의 일’로 여겼던 중독이 이제는 또래의 메시지창 안에서 은밀히 퍼진다. 마약은 더 이상 어둡고 낯선 골목의 문제가 아니다. 손바닥만 한 화면 속에서, 유혹은 ‘익명’이라는 이름의 포장지로 배달된다. ▼“약과 독은 한 뿌리에서 자란다(藥與毒同根)”는 말이 있다. 치료의 도구가 타락의 수단으로 바뀌는 건 순간이다. 청춘은 그 순간에 약하다. ‘호기심’이라는 이름의 문을 한 번 열면, 문 너머에는 돌이킬 수 없는 중독의 미로가 기다린다. 인터넷과 텔레그램은 그 미로의 입구를 무한히 복제한다. 검찰의 단속망이 아무리 촘촘해도, 그물은 이미 디지털의 바다 속에서 무력해진다. 단속은 잡을 수 있어도, 유혹은 잡지 못한다. 이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적토마(赤兎馬)’를 얻고도 결국 패망한 여포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힘을 쥐었으되, 마음을 제어하지 못한 자의 전형이다. 마약은 그렇게 인간의 내부를 무너뜨린다. 수사와 처벌의 강화가 필요함은 자명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싸움을 이길 수 없다. 중독자의 사회 복귀는 단순한 선행이 아니라 공동체의 자기 보호다. 재활을 외면한 사회는 결국 더 많은 마약 소비자를 길러낸다. 회복의 사다리를 놓지 않는 한, 우리는 ‘감옥 밖 중독자’라는 또 다른 재범자를 만들 뿐이다. ▼마약은 법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문제다. 한 사람의 붕괴는 공동체의 균열로 번진다. 강원도의 수치가 경고하는 건 숫자가 아니라 방향이다. 어둠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어둠을 비출 등불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지금 필요한 건 ‘단속의 눈’이 아니라 ‘회복의 손’이다. 잃어버린 ‘청정국’의 이름을 되찾는 길은 더 많은 철창이 아니라, 더 깊은 성찰 속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