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일보 모바일 구독자 280만
칼럼

[권혁순칼럼]군기 빠진 軍에 첨단장비는 허수아비다

논설실장

군 기강 해이 도를 넘어

거동수상자를 놓치고도

'허위 자백'까지 시켜 물의

나폴레옹은 총칼과 대포로만 전쟁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장군이었다. 그의 용병술의 핵심에는 항상 대의명분이 있었다. 그는 대의를 중심으로 병사들을 결집시켰다. 초기에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이상을, 후기에는 번성하는 프랑스 제국의 영광을 대의로 삼았다. 그로 인해 프랑스 병사들은 단지 일개 병사가 아니라 스스로 신화를 만들어 가는 존재라는 자부심에 가득 찼다. 그 자부심은 전군에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 프랑스 군의 사기(士氣)를 한껏 드높였다(정진홍, 군에 사기를 배식하라). 사기는 군기(軍紀)에서 나온다. “군대의 생명은 군기다. 군기를 날 선 상태로 유지하거나 강화하지 못하는 지휘관은 잠재적인 살인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맹장이었던 조지 패튼이 한 말이다.

감춘다고 감춰지는 시대인가

그런데 패튼은 군기가 복장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는 늘 기마장교용 부츠를 신고 군인 정복을 입은 상태에서 별 세 개가 번쩍번쩍 빛나는 유광 헬멧을 착용했다. 참모들이 곳곳에 저격병투성이인데 유광 헬멧만은 벗으라고 조언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아가 그는 복장이 엄정하지 못한 병사는 전투에서도 승리하지 못한다며 언제나 헬멧과 각반은 물론 심지어 전투 중에도 넥타이를 매게 했다. 전장서 병사 일탈과 실수에 일벌백계의 처단을 내리고 흩어지는 기세를 결집했던 극단의 처방은 모두 군기와 사기를 지키고 부양하기 위함이다. 춘추전국시대 '무패신화의 장군', 오기가 지은 오자병법의 '필사즉생 행생즉사(必死則生 幸生則死).'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요, 요행히 살려 하면 죽을 것이라는 결사의 다짐이다. 임진왜란 영웅 이순신 장군의 말로도 유명한 '생즉사 사즉생'도 극한의 사기 다짐이고, 사기(史記) '회음후열전' 속 한나라 조나라의 최후결전서 유래한 '배수진'도 군기와 사기의 다짐이다. 이 군기와 사기를 들추고 경계함이 먼 옛날, 먼 나라만의 일일까. 지금 대한민국 국군의 사기는 어떤가? 북한 어선 '대기 귀순' 사태를 놓고 경계 실패와 사건 은폐·축소 의혹이 불거졌던 군의 사기는 말이 아니다. 이번에는 거동수상자(거수자)를 놓치고도 오리발을 내밀다 '허위 자백'까지 시키는 등 사건을 조작·은폐하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이 군 의도대로 감춰지는 시대라면 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위기의 군대 신뢰 보낼 수 없어

군의 기강 해이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정경두 국방부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이 국회에 제출될 모양이다. 이러는 사이 군의 사기는 바닥을 치며 자조감(自嘲感)이 팽만해 있다. 나폴레옹은 말했다. “물량이 1이라면 정신은 3”이라고. 그렇다. 병사들이 사기 충천(衝天)한 정신력으로 잘 무장하고 있으면 세 배 아니라 그 이상의 적도 섬멸할 수 있다. 하지만 정신이 파괴되고 사기가 무너지면 아무리 크고 강대해 보여도 자멸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군은 스스로 무너지고 있는가. 군은 매일 국민의 세금으로 세끼를 먹는다. 하지만 군이 진짜 먹어야 할 것은 사기와 군기다. 사기가 떨어지고 군기가 빠진 '당나라 군대', 즉 위기의 군대라면 국민은 신뢰를 보낼 수 없다. “군이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는 정치권이나 언론의 지적이 아니다. 군 스스로의 진단이다. 2010년 7월 당시 김태영 국방장관은 합참의장 등 일부 군 수뇌부가 개편된 후 처음 열린 전군지휘관회의에서 대한민국 국군의 '위기'를 언급했다. 천안함 사태로 군 신뢰도는 급락했고 내부적으로 자괴감이 심각하다고 밝혔다. 그의 언급 이후 근 10년이 흐른 지금 우리 군은 어떻게 변했는가. 군의 진짜 밥인 사기와 군기를 제대로 먹여 보살핀 병사가 잘 싸우는 군인이 된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군은 사기와 군기가 아니라 모욕을 먹고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사기가 떨어지고 군기가 빠진 군은 아무리 첨단장비를 갖추고 있어도 허수아비다.

hsgweon@kwnews.co.kr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