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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석희 선수의 폭로 이후 체육계가 고질적인 폭력·성폭력사건으로 여전히 시끄럽다. 심석희 선수는 성폭행 피해 사실이 밝혀질 경우 국가대표 선수라는 책임감과 주변의 시선, 혹시 모를 가해자의 보복이 너무 두려웠다고 한다. 더욱이 큰 상처를 입을 가족들을 생각해서 지금까지 모든 일을 혼자 감내해 왔지만 더 이상 자신과 같은 피해가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그 후 또 다른 선수들의 피해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라는 화려함 뒤에 어린 선수들에게 권력과 권위를 이용한 폭행과 강압이 있었다는 사실에 평화올림픽의 자부심은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서지현 검사가 한 방송 뉴스에 나와 자신이 겪은 성폭력사건에 대해 폭로하고 난 후 각계각층에서 미투폭로가 이어졌고 위드유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에 발맞춰 국회에서는 젠더폭력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성폭력과 관련한 법안이 100건이 넘게 발의됐다. 마치 세상이 한꺼번에 바뀌어 천지가 개벽하고 한국여성들은 성폭력에 대해 당당하게 피해 사실을 고발할 수 있고 가해자가 처벌받는 사회가 될 것 같았다.

서지현 검사가 용기 내어 말하기까지 7년이 걸렸다. 심석희 선수는 4년, 원주청원학교의 피해 부모와 교사들도 수년간 반복된 성폭력을 참아 왔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동안 왜 가만히 있었느냐고. 그 이유는 가해자들에게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해 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여성이 직장에서 성희롱을 문제 삼으면 같이 일하기 힘든 여성으로 취급된다. 옷차림, 행실 문제를 들먹이며 피해자를 원인 제공자로 몰아가기 일쑤다. 결국 피해자는 입을 다물고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미투 이후 여성 검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법무부의 전수조사 결과 70% 이상의 여성 검사가 성추행 및 성폭력 피해를 겪었다고 답했다. 학력이 높고 상대적으로 지위가 높은 검사들도 조직 안에서는 성폭력의 대상이고 피해에 노출돼도 말하지 못하는 것은 일반 여성과 다르지 않다. 이렇듯 성폭력은 명백하게 권력을 기반으로 하는 범죄다.

한국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겪는 2차 피해는 매우 전형적이다. 피해자의 업무능력과 인간관계에 대한 폭로 그리고 정치적 목적, 인사이익, 돈을 노린 것이라는 등 의혹을 제기하며 2차 가해가 이어진다. 그리고 가해자는 피해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거나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역고소한다. 이때부터 피해자는 긴긴 법적 공방의 시간을 경제활동도 포기한 채 홀로 버텨야 한다. 지금까지 내려졌던 법적 판결을 보면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말하는 것이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미투에 동참했던 피해자들의 전례는 매우 중요하다. 이대로는 안 된다. 2008년 스포츠계의 성폭력 폭로가 있었을 때 발표한 대책이 지켜졌다면 빙상계 성폭력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린 선수들이 인생을 걸고 낸 이 용기에 대해 사회가 정당한 응답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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