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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선칼럼]만추, 스산해진 빛깔은 ?<물음>인가 !<느낌>인가

용호선 논설위원

나뒹구는 낙엽처럼 간사한 세태의 가벼움

제 아무리 잘나도 "본래 없었던 것만 못 해"

'씨앗은 단단할수록 싹이 제대로 튼다'

“간사합니다.” 후배가 보내온 메시지는 결코 틀리지 않은 문구였다. 그러나 그는 쥐구멍에라도 숨을 듯 몸 둘 바를 몰라했다. '감사합니다'라는 수정된 문자를 연신 날리며 실수임을 고백한다. 그리곤 오타를 날린 자신의 손가락을 탓했다. 나의 답은 초지일관이다. “아니야, 간사한 게 맞아! 세태가 그렇잖아!”

'윤리'를 깔아뭉갠 '법'의 가벼움

실수와 진심을 헤아리기 어려운 현실이다. 계절이 그렇다. 모레(8일)가 입동이고 보면 환절기다. 어수선함은 물론이고 벌써 스산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화사했던 봄, 푹푹 찌던 여름의 아우성, 화려했던 가을의 풍요도 언제 그랬냐는 날씨이니 그 느낌이 간사하다. 피부를 통해 인지하는 직감이다. 도처의 세상사를 전하는 뉴스도 그렇다. “좌파는 강남에 살면 안 됩니까?”라고 항변했던 사람의 뒤끝이 혀를 차게 했다. 이른바 '조국 사태'다. 법무부 장관, 그를 둘러싸고 벌어진 파동은 온 나라를 집어삼킬 기세였다. 그러나 우리가 확인한 것은 '법'은 최하위 규율, 그에 앞선 '윤리의식'을 되새기게 했음이다. 결국 실체도 없고 법문화되지도 않은 '국민정서법'의 효용을 재삼 일깨웠다.

나뒹구는 낙엽이 출근 발걸음에 차인다. 건장한 청소부의 비질도 소용없다. 저 빗자루로 구차하게 튀어나온 허튼소리들을 쓸어 담게 할 수는 없는지…. 그 생각의 진원은 방금 전 뉴스에서 접한 씨부렁이다. 공관병에 대한 갑질 논란을 촉발케 한 대장이 자처한 기자회견 자리에서 의혹을 제기한 사람을 향해 “삼청교육대 가서 교육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무죄 판결을 과시한 뉘앙스가 다분하다. 지목된 당사자의 되받아치기도 가관이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지불되는 군인연금, 박탈됐으면 한다.” 막말치고는 고약하기만 하다.

오랜만에 찾아뵌 스님은 여전히 너그러운 자태였다. 달관의 경지에 들었음이 분명하지만 대처의 모순을 질책하는 음성은 여전히 시퍼렇다. “예전 휴가 때 찾아오기까지 했던 대통령을 못마땅해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내가 뭐라 했는가?” “'국민을 편 갈라놓고 자기 생각대로 몰아가는 게 시답잖아'라로 제게 일러주셨습니다. 그 말씀 가슴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그래요? 요즘 그런 현상이 부쩍 기승을 부리는데 좀 더 지켜봅시다.”

지난해 적멸에 든 노스님이 생전에 일갈해준 말씀이 생생하다. “제아무리 좋은 것도 본래 없었던 것만 못하느니라!” '육조단경'에 나오는 혜능 스님의 게(偈)에서 유래한 고언이다. 요지는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다. 원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요, 명경 또한 대(臺)가 아니다. 본래 하나의 물건도 없는 것이니 어디서 티끌이 일어나리오(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제 갈 길로 흐르는 바람에 낙엽이 우수수 흩날리는 것을 보니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차라리 잘됐다"는 꿈보다 해몽

뉴스 해설자들은 진보와 보수를 상징하는 사퇴한 직전 법무장관과 제1야당 영입 1호로 지목됐던 대장이 배제된 것에 대해 “차라리 잘됐다”는 견해다. 진보진영의 희망봉으로까지 대두됐던 사람의 궤적이 청년 세대들을 분노케 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총선 국면에서 '삼청교육대' 발언이 나왔으면 낭패였을 것이기 때문이란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속설이 그렇듯 액운을 일찍이 털어냈다는 안도다.

“보수와 진보, 폐쇄와 개방의 구분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좌파와 우파라는 구분이 구시대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양상이 바뀌는 것이다.” 얼마 전 신문에서 읽은 자크 아탈리 플래닛 파이낸스(국제빈민구제기구) 회장의 견해다. 도긴개긴이라는 거다. 성숙해야 하고 성찰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 동서고금 삶의 지침이다. '씨앗은 단단할수록 싹이 제대로 튼다'는 것이 농부들의 경험이다. 닥쳐올 추위, 시련을 두려워할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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