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일보 모바일 구독자 240만
칼럼

[기자 칼럼 신호등]한겨울 거리에 나선 이유

정윤호 횡성주재

칼바람이 불던 아침 거리에서 횡성군민을 만났다. 수은주가 영하 16도를 가리키는 맹추위에 그는 빨간 피켓을 목에 걸고 출근길 바삐 오가는 차량을 응시했다.

'시끄러워 못살겠다! 블랙이글스 즉각 해체하라!' 짧은 문구였지만 겨울 아침 추위를 뚫고 원주 공군부대 앞을 찾은 심정이 느껴졌다. 그는 “안보 혜택 뒤에 누군가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며 “하물며 안보와 무방한 피해라면 억울함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고 말했다. 횡성군용기소음피해대책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초부터 공군 제8전투비행단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이어 가고 있다. 횡성 남촌 이장, 지역사회단체, 횡성군의회도 바통을 넘겨받으며 힘을 보탠다.

기억을 되짚어 지난해 9월 공군부대 앞에서 열린 군민궐기대회를 떠올렸다. 코로나19 여파로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진행된 이날 궐기대회는 차량 50여대가 공터를 가득 메우고 경적을 사정없이 울려댔다. 쏟아지는 빗줄기에도 지역 인사들은 단상에 올라 규탄 발언을 쏟아냈다. 평일 오후 예상을 뛰어넘는 참가에 군용비행기 소음에 대한 지역의 분노가 예사롭지 않음을 재확인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해 7, 8월 국방부의 소음측정조사설명회는 매 회가 주민들의 성토장이었다. 소음 측정지점의 위치와 숫자에 대한 불만이 거세게 일었다. 횡성군도 국방부에 거듭 측정지점 조정을 요청했으나 만족스러운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간신히 시작된 소음측정을 바라보는 시선도 당연 곱지 않았다. 주민들은 측정 개시 이후 군용비행기 소음이 평소 같지 않다는 의심을 제기했고 결국 추가 조사까지 이뤄졌다.

횡성군민들의 뇌리에 국방부와 공군부대는 어느 순간 '불통'과 '불신'의 이미지가 굳게 자리 잡은 듯했다.

원주비행장은 6·25전쟁 당시 미군의 주도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1970년대부터 제8전투비행단이 주둔했고, 2010년 12월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까지 이전해 와 10년을 넘겼다. 출구 없이 늘어만 가는 고통에 주민들이 단단히 화가 날 법하다.

군(軍)과 횡성군이 그간 대화를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17년 8월 공군 8전비와 횡성군, 원주시가 참여한 민·관·군협의체가 발족됐고 수차례 회의도 열렸다. 그러나 블랙이글 해체를 비롯한 군용비행기 소음 저감을 위한 근본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니 회의는 기약 없이 중단됐다. 지난해 11월 군소음보상법 하위법령 시행으로 금전 보상의 길이 열렸지만 민간공항에 미치지 못하는 보상 기준과 월 6만원 상한을 둔 보상금은 주민들의 간절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성과였다.

횡성군용기소음피해대책위는 군소음보상법 시행과 별개로 블랙이글 해체를 강력히 주장한다. 10여년을 고통 속에 살았지만 비행팀을 타 지역으로 옮겨 애꿎은 피해자를 새로 만들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대책위는 릴레이 1인 시위를 무기한 이어 가겠다고 밝혔다. 국회에 도움을 호소하고 상경집회와 단체 농성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지금도 횡성군민들은 한파를 견디며 거리에서 답을 기다린다. 국방부의 빠른 결단이 필요하다.

가장 많이 본 뉴스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