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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

[언중언]마음의 상처

율곡 이이는 '격몽요결'에서 제사의 요체에 관해 “사랑하고 공경하면 그뿐”이라고 했다. “가난하면 집안 형편에 어울리게 하면 되고, 병이 났다면 몸의 형편을 헤아려 제사를 지내면 되는 것”이라고도 했다. 정성을 담는다면 맹물 한 그릇도 훌륭한 제수(祭需)가 될 수 있다. 사랑과 공경의 마음이 없다면 진수성찬도 헛것이고 명절 스트레스만 키운다. ▼명절 때 가족 간 툭툭 던지는 말도 마음의 상처와 스트레스가 된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개인과 개인 간에는 신체적 경계는 물론이고 심리적 경계가 있다. 예민한 개인적 문제를 마구 묻거나 미리 판단해 말하는 일은 가족 간에도 마음의 상처가 되기 십상이다. ▼상처를 주는 단골 메뉴는 결혼, 취직, 진학 같이 매우 개인적이고 예민한 문제다. 가족으로 보면 결혼이 대를 잇기 위한 행위이기도 하나 개인으로서는 평생 마음과 몸을 맡길 내 '반쪽'을 찾는 매우 중요한 일이니 아무리 가족이어도 쉽게 언급할 화제가 아니다. 진학이나 취직 역시 당사자에게 가장 고민인 일이니 자발적으로 의견을 묻고 도움을 청하기 전에는 가족 모임이라도 삼가야 마땅하다. 가족은 남이 아니니, 내가 늘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하는 이야기이니 이 정도는 허용된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윗분들의 마음에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아랫사람들이 이미 다 커 버린 성숙한 어른이라는 지각이 확실하게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점도 문제의 원인이다. 내가 나이 들 때 상대방도 나이가 든다는 명확한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가족과 함께 명절 보내기를 꺼리는 젊은 세대들이 명절 때만이라도 가족의 품으로 갈 수 있게 하려면 가족 구성원들이 먼저 취업이나 결혼, 출산 등 젊은층들이 과거 세대보다 잘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민감한 질문은 삼가고 배려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올해 추석이 눈앞이다. 일가친척 볼 낯이 없어 고향을 찾지 못한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추석에도 문을 연다는 학원과 카페가 있다는 소식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권혁순논설실장·hsgweon@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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