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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

[언중언]`조문(弔問) 정국'

1914년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서부 전선 플뢰르 벌판. 영국과 독일은 참호 학살전에서 수습 못 한 수많은 시신을 앞두고 대치했다.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 독일군 진영에서 갑자기 울려 퍼진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캐럴에 영국군은 환호했다. 시신 수습을 위한 대화가 시작됐고 선물 교환, 크리스마스트리 제작, 축구 경기가 이어졌다. 기적이나 다름없던 잠시의 '크리스마스 휴전'은 마음을 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모친상을 치렀던 사흘 동안 조국 사태로 두 달이 훌쩍 넘도록 이어져 온 여야 간 정쟁이 잠시 수그러들었다.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대통령을 '벌거벗은 임금님'에 빗대 풍자한 애니메이션을 지난달 30일 잠정 삭제했다. 같은 날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연설을 시작하면서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등에게 조의를 표하며 “모친상을 당한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해야 하는 제 처지도 참으로 곤혹스럽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장례를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하고 정치인들의 조문은 정중히 사양했지만 야당 대표들의 모친상 조문은 받았다. '조용한 장례식'을 원칙으로 정했지만 고인을 애도하기 위해 정치논리를 떠나 먼 길을 찾아온 야당 대표들을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대통령의 아량을 부디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는 데에도 항상 보여주기를 바란다.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에게는 정적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독설을 퍼붓던 민주당의 에드윈 스탠턴을 새 내각의 전쟁장관에 임명했다. 경선 과정에서 혈투를 벌인 윌리엄 시워드와 새먼 체이스에게도 국무장관과 재무장관을 맡겼다. 국민은 이런 모습에 감동한다. 퓰리처상을 받은 역사학자 도리스 굿윈은 정적까지 껴안는 포용과 통합의 리더십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권력의 조건'이라고 했다.

박종홍논설위원·pjh@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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