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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조정에서는 고위 관료들에게 인재들을 추천하게 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동반 책임을 지는 `연좌제(緣坐制)'적인 제도가 있었다. 임금까지도 자유롭지 못했다. ▼선조는 인재 추천을 잘못한 신하들의 죄를 매우 엄격하게 다뤘다. 그런데 임진왜란 시기에 자신도 그 관행에 걸렸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과 원균의 지지파로 조정이 둘로 갈라져 싸울 때, 그는 원균 측에 섰다. 이순신을 체포해 서울로 압송한 뒤 억지 죄목을 만들어내 죽이려고까지 들었다. 그러나 원균이 신임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된 지 몇 달 안 돼 참혹하고 처절하게 패하며 통제사 자신도 죽은 미증유의 참변이 일어났다. 경악한 그는 이순신을 다시 통제사에 임명해 사태를 수습했다. 그 후 선조는 자신이 인재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통제사 임명을 잘못해 나라를 모두 망칠 뻔했던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계속했다.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인 이익(李瀷)은 `성호사설'에서 통치의 가장 기본이 되는 조건은 `올바른 인재 획득'이라는 소신을 피력했다. 그는 인재 추천 문제에 관한 중국 제(齊)나라의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사례에서 임금인 환공(桓公)이 관중을 추천한 포숙아를 크게 칭송한 일을 좋은 예로 들었다. 그러나 그가 가장 바람직한 사례라고 거듭 강조한 것은 제나라 위왕(威王)의 경우였다. 위왕은 좋은 인재를 추천한 즉묵대부(卽墨大夫)에게는 1만 호의 고을을 봉해 주었고, 간신을 추천한 아대부(阿大夫)는 삶아 죽이고 그를 칭찬했던 자까지 죽였다. 중국의 사서 `통감절요'의 기록이다. ▼자유한국당이 지난달 31일 내년 총선을 겨냥한 1차 영입 인사 8명을 선보였다. 당초 영입 대상으로 거론됐던 박찬주 전 육군대장과 안병길 전 부산일보 사장은 제외됐다. `공관병 갑질' 이력과 지방선거 출마 배우자 지지 문자메시지 발송 사건이 문제가 됐다. 여든 야든 인재는 널리 구해야 한다. 인재 영입에 실패하면 상대 당은 좋아하겠지만 결국 그 피해는 국민이 받는다.

권혁순논설실장·hsgweon@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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