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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

[언중언]벚꽃 만개의 신호

대학을 졸업한 어느 취업준비생의 고백이다. “학생 시절 때맞춰 피는 벚꽃은 늘 야속한 존재였다. 벚꽃이 피었다는 것은 중간고사가 다가온다는 징표였고, 채용시즌이라는 엄포였다. 온전히 꽃구경만을 위해 시간과 마음을 할애하는 벚꽃 놀이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화려하게 핀 꽃을 즐기는 것이 내겐 허락되지 않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돌아보니 안쓰럽고, 할 수만 있다면 그때의 나에게 '괜찮아'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땐 그랬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봄 시험지, 자기소개서와 씨름하며, 벚꽃을 외면하며 났다.” 아마 지금도 어딘가에는 계절의 황홀함을 즐기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청년 실업이 심각하다. 통계청 2월 고용동향 분석에 따르면 취업준비자가 85만3,000명으로 역대 최다치를 갈아 치운 것으로 나타났다. 1년 새 20~30대 청년 '취준생'이 7만명 넘게 늘었다. 취준생은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15~29세)을 의미한다. 청년 무직자를 가리키는 '니트족'도 2020년 말 현재 전년보다 24% 넘게 급증한 43만6,000명에 달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나라마다 니트족을 뜻하는 신조어가 많다. 미국에선 트윅스터(Twixter)라고 부른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하지 않고 부모에 기생하는 '낀 세대'라는 의미다. 이탈리아에선 엄마가 해주는 밥에 집착한다는 뜻으로 맘모네(Mommone)라 한다. 취업을 못 한 청년들을 더욱 슬프게 하는 단어들이다. ▼국내 대기업 10곳 중 6곳이 올 상반기(1∼6월) 중 한 명도 채용하지 않거나 채용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조사와 비교할 때 채용에 소극적인 기업이 큰 폭으로 늘어나 채용 시장에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해 공기업 등 공공기관이 새로 채용한 청년 인력은 전년보다 20.5% 줄었고 올해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4월 벚꽃 감상을 사치로 여기는 청춘들에게 희망의 사다리를 놓을 수 없는 걸까. 청년의 미래가 불투명한 나라의 미래는 밝을 수 없다.

권혁순논설주간·hsgw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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